진실의 윤리학 안에서, 시와 소설의 역할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by readNwritwo

그 진실의 윤리학을 위해 문학은 있다. 혹은 문학 안에서 그 진실이 솟아오른다. 물론 시와 소설의 역할이 같지 않다. 시는 발화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틈에서 출몰하는 진실을 겨냥하고, 소설은 행위가 감행되고 철회되는 틈에서 발생하는 진실을 조준한다. 그것이 마침내 격발 할 때 진실이 분출하고, 문학의 공간 ‘사건’(모로코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현장이 된다. 본래 모든 사건은 수많은 단서들이 착종되어 있는 거대한 질문이다. 이 진실을 어찌할 것인가. 이제 다시는 진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이것으로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이 난감한 질문들 속에서 사건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지고 비평은 현장검증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문학은 이제 대답하지 말고 질문하라. 문제는 정치(의 윤리) 위한 대답이 아니라 윤리(의 정치)를 위한 질문이다. 대답하면서 장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면서 장 자체를 개시한다. 윤리의 영역에서 모든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이고, 모든 첫 번째 질문은 이미 하나의 창조다. 발화의 종말과 행위의 파국에서 시와 소설은 시작된다. 그대 자신의 말을, 그대 자신의 행위를 하라. 이를 무로부터의 창조라 부를 것이다. 문학은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다. 몰락의 에티카다.(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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