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까치, 1997)
<파열의 시대 : 20세기의 문화와 사회>는 1914년 이후의 세대와 더불어 부르주아 사회가 쇠퇴해서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하게 된 이후에 부르주아 사회의 예술과 문화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중세가 1950년대에는 지구상의 80퍼센트에서 그리고 인간관계를 통제했던 규칙과 관습들이 눈에 띄게 낡아서 느슨해진 1960년대에는 그 나머지 지역에서 갑자기 종언을 고한 이후로 인류가 겪은 광범위한 지각 변동의 한 측면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자신의 위치를 잃어버린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그리고 새로운 21세기의 첫 몇 해 동안 평생에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쩔 줄 몰라 당혹해하면서 안내자나 지도도 없이 알 수 없는 미래에 기대를 걸었던 역사의 한 시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역사가로서 사회 현실과 예술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 데에 대해서 때때로 숙고하며 글을 써오던 차에……
(중략)
이런 문화적 풍경은 새롭기는 했지만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래의 제후적, 왕정적 그리고 교회적 문화에, 즉 고급예술과 전시물의 전형적인 후원자들이었던 권력과 엄청난 부의 세계에 깊이 뿌리를 둘었다. 그 풍경은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전통적 위신과 재정적 권력의 이런 결합을 통해서 상당한 정도로 오늘날에도 존속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태생이나 정신적 권위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아우라에 의해서보호되지는 않는다. 이 점은 그런 문화적 풍경이 유럽의 상대적인 쇠락을 겪고서도권력과 통 큰 씀씀이 그리고 높은 사회적 위신을 결합시키는 문화계라면, 어디서든전형적인 표현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이 정도로 고급문화는 샴폐인과 마찬가지로 세계화된 지구에서도 유럽 중심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책의 2부는 이 시대의 유산과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로 결말을 맺는다. 20세기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사회와 그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가치들의 붕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중략)
부르주아 문명은 구래의 돈벌이 방식을 파괴하기에 앞서 그런 돈벌이 방식을 변화시킨 20세기의 과학과 기술의 혁명, 서구 경제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생긴 대중 소비사회 그리고 대중들이 유권자로서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 정치 무대에 결정적으로 진입한 것이라는 삼중의 복합적인 충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20세기, 더 정확히는 20세기 후반은 서구의 보통 남성들과, 그보다 정도가 덜하기는 하지만 보통 여성들의 시대였다. 21세기에는 이런 현상이 세계화되었다.(p.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