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말>(마음산책, 2015)
머릿속에서는 이미 구상이 다 끝나고 남은 노력이라고는 글자로 옮겨서 제대로, 세심하게, 매력적이고 생생하게 써내는 것뿐이었죠. 하지만 당시 제가 마음으로 실감하지 못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니 미칠 것만 같더군요. 오로지 <은유로서의 질병>을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지요. 왜냐하면 그 책의 아이디어들은 모두 발병한 후 처음 한두 달이내로 괴장히 빨리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억지로 마음을 돌려 사진에 관한 책에 집중하기 위해서 대단히 애를 써야 했어요.
자,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길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내게는 글쓰기를 지금 현재 내게 벌어지는 일과 연결하는 쪽이 그 경험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안 그러면 그냥 자기 자신을 두 쪽으로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