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2. 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

12. 가상공간에서 쌓은 우정이 현실이 될 때

by 밍구


12. 가상공간에서 쌓은 우정이 현실이 될 때


“엄마, 이 사람은 귀신이야? 입만 있어.”

나경의 말에 슬쩍 아이의 태블릿을 보니 입부터 상반신만 나오게 카메라 각도를 잡은 채 온갖 젤리를 맛깔스럽게 씹어 먹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우, 나경아. 너는 이런 게 재미있니? 엄마는 이런 거 싫다, 야.”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술이 사람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동동 떠 있는 느낌이었다.

“엄마, 눈까지 나온 거 찾아줘. 나 얼굴 보고 싶어, 얼굴.”

딸은 구태여 입술만 찍겠다는 유투버 마음도 모른 채 눈까지 나온 영상을 찾아 달라고 성화였다. 어린 마음에 호감이 간 이 먹방 유투버의 얼굴이 전부 보고 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영상은 전부 입술이 동동, 목소리 대신 음식물을 물고 뜯고 씹고 빨아먹는 소리만 가득했다.


“동생, <퀸스 갬빗> 봤어? 재미있어. 한 번 봐봐. 너도 좋아할 거야.”

두 딸아이의 아빠가 된 친정오빠가 하루는 내게 넌지시 미국 드라마 한 편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오빠 말대로 그 드라마는 내 취향이었고, 나는 남편과 아주 오랜만에 잠을 잊고 체스 신동의 성장 이야기에 푹 빠져 한 달을 보냈다. 역시 오빠의 추천작다웠다.

친정오빠는 어렸을 적부터 게임을 잘했고, 재미있는 것은 나와 함께 나누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바둑대회를 나가던 오빠는 중학생 때는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였다. 오빠는 점차 바둑판 앞 대신 컴퓨터 앞에서 자신의 지략을 펼쳤고, 자신이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밤늦은 시각까지 텔레비전을 통해 헤드셋을 뒤집어쓴 이기석 선수의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관전했다. 특히나 오빠는 내가 고전하던 슈퍼마리오도, 포트리스도, 심지어 지뢰 찾기도 모두 아주 쉽게 전진하고 승리하며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인터넷 서버에 접속하여 아이디를 로그인하여 레벨을 올리는 게임이 흥행할 적에는 오빠가 몇 분만 나의 아이디를 갖고 유랑하면 나는 금세 레벨업이 되어 있었다.

“이건 접속만 하고 있어도 포인트가 쌓이니까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이거부터 로그인해 놔.”

오빠는 내게 ‘포립(4 leaf)'이라는 새로운 게임의 문을 열어 현실의 나와는 전혀 다른 아바타를 만들어주었다. 긴 금발머리에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푸른 눈에 엘프 귀를 가진 아바타가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하교 후 컴퓨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졌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접했던 인터넷 채팅 ’sky love'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퀴즈퀴즈’와 ‘한게임’은 매너 없는 고수에게 자주 치이는 하수였던 탓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러나 포립에 접속하여 이국적인 아바타에 나를 넣어 그곳에 표류하고 있는 이들과 채팅하는 건 즐거웠다. 조금 전 학교에서, 혹은 잠시 후 학원에서 다시 만날 친구와의 ‘버디버디’는 휴대폰이 없었던 그 시절, 집 전화 대신 주고받는 약속의 메모였다. ‘십분 후 시계탑에서 만나’, ‘내일 아침 8시 반에 상가 앞 건널목에서 보자, 늦지 마.’와 같은 쪽지는 날개 달린 초록 신발을 신고 버디 사이를 이어주었다. 그러나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맺은 친구와의 채팅은 메신저의 기능과는 다른 독특한 재미와 설렘이 있었다. 현실의 얼굴도, 목소리도, 키도, 심지어 이름과 사는 곳도 알 수 없으나 비슷비슷한 아바타 중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은 위험하면서도 신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얕고 가벼울 수 있는 가상세계에서 행복한 기억의 한 조각을 지금도 손에 쥐고 있다.

‘샤른호랭이’란 아이디의 그는 노래 실력이 출중하고, 농구를 매우 잘하는 <반지의 제왕> 속 프로도를 닮은 두 살 많은 오빠였다. 포립에서 친해진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여 마음을 나눴다. 서로의 사진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날에는 하교 후 피시방으로 달려가 컴퓨터 위에 달린 하두리캠을 보며 멋쩍은 미소를 짓기도 하고, 웃을 것 하나 없는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반달눈을 만들어 이메일에 첨부했다. 가상공간에서 쌓은 우정은 손이 닿는 거리에 있지 않았지만, 오히려 매일 얼굴 보는 친구에게 말 못 할 고민이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각자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는 학원 가는 길에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언뜻언뜻 진로와 꿈의 대학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그로부터 삼 년 후, 추운 겨울 그도 나도 초행이었던 서울의 밤거리에서 엘프 귀를 가진 노랑머리와 잿빛 머리가 아닌 너와 나로 처음 만났다. 이후로도 몇 번이고 끊어질 듯 이어졌던 그와의 인연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대생과 군인이 되어서도,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된 지금까지도 평소에는 낡은 존재로 박제되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반짝, 행복한 기억의 조각이 되어 빛나고 있다. 실제로 만날 수 없는 거리에서 시작한 우정은 어쩌면 러시아에 사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익숙한 형태의 존재방식이기에 더 빛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조각 덕분에 나는 지금도 가상공간에서 만난 이를 실제로 만나는 설렘을 터득하여 그러한 날을 고대하는 낭만 아줌마가 된 것은 확실하다.


***

나경아, 지금 너에게는 친구가 앞 동에 사는 한국인 친구 단 한 명이 전부지만, 앞으로 성장하면서 친구를 사귈 기회는 무궁무진해질 거야. 더군다나 학교에서 한국인보다 다른 나라 친구를 더 많이 만나게 될 네게 친구란 엄마의 그것과는 조금 다를 것 같구나. 그리고 너의 세대에서는 가상공간에서 처음 연을 맺게 되는 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네게 가상공간은 비단 인터넷뿐만 아니라 한국이 될 수도, 혹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끝났다면 러시아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엄마는 해본다.

엄마는 요즘 프로젝트와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들과 내 집 식탁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진짜 모스크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경험을 했어. 그리고 거리의 제약으로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이의 일상이 내게 익숙하고, 새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걱정하게 되는 이들도 마음에 하나둘 자라나기 시작했지. 어렸을 적에는 ‘인터넷으로 만난 누군가’라고 운을 떼면 굉장히 불순하거나 조금은 음탕한 느낌이 났던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만 엄마가 직접 겪어보니 분명 숨을 곳 없는 오프라인에서 시작한 친구와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은 확실해. 네가 가상공간에서 만난 친구를 진짜로 만나는 약속 장소로 향할 때 이 노래를 추천할게. 현실 공간의 첫 만남에서 마법 융단을 타고 멋진 푸른 세상 속을 나는 기분을 두 사람 모두 느꼈다면, 아마 그 친구는 앞으로도 네 인생에서 어떠한 거리적 제약 없이 좋은 친구로 네 마음속에 계속 남아 줄 거야.


Track 12.

자우림 [매직 카펫 라이드] 작사·작곡 김윤아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로

나르는 마법 융단을 타고

이렇게 멋진 푸른 세상 속을

나르는 우리 두 사람


신경 쓰지 마요 그렇고 그런 얘기들

골치 아픈 일은 내일로 미뤄 버려요

인생은 한번 뿐 후회하지 마요

진짜로 가지고 싶은걸 가져요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에

지어진 마법 정원으로 와요

색색의 보석 꽃과 노루 비단

달콤한 우리 두 사람


웬일인지 인생이 재미없다면

지난 일은 모두 다 잊어 버려요

기회는 한번뿐 실수하지 마요

진짜로 해내고 싶은걸 찾아요

용감하게 씩씩하게

오늘의 당신을 버려봐요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 위로

나르는 마법 융단을 타고

이렇게 멋진 장밋빛 인생을

당신과 나와 우리 둘이 함께

인생은 한번뿐 후회하지 마요

진짜로 가지고 싶은걸 가져요

용감하게 씩씩하게

오늘의 당신을 버려봐요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위로

나르는 마법 융단을 타고


이렇게 멋진 초록 바다 속을

달리는 빨간 자동차를 타고

이렇게 멋진 푸른 세상 속을

나르는 마법 융단을 타고

이렇게 멋진 장미빛 인생을

당신과 나와 우리 둘이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