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9. 임재범 [비상]

19.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시간을 관통할 때

by 밍구


“아진아, 우는 거 아니야. 나경이 금세 그칠 거야. 따라 울지 마, 제발.”

다급하게 아진의 엄마가 울려고 시동 거는 자신의 딸을 달랜다. 아진은 나경의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이다. 소소한 것에도 감정이 요동치는 네 살 소녀들에게는 울 일투성이다. 문제는 나경이 울면 딸의 친구가 항상 더 크게 따라 울고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탓에 항상 울음 끝이 짧은 나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룰루랄라 하고, 잘 놀고 있던 아진은 영문도 모른 채 서럽게 울게 되는 것이다.

“우와, 이모는 너희 우정이 정말 부럽다. 아진아, 이다음에 커서도 나경이한테 슬플 때면 같이 울어주는 친구가 되어줘야 해. 백 마디 말보다 그렇게 옆에서 같이 울어주는 게 더 큰 위로가 되더라고. 물론 지금은 아니고. 이거 먹고 뚝 그치자!”

나는 아진에게 막대사탕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다양한 수시 전형이 전국의 수험생에게 일일이 공지될 수 없었다. 스스로 원하는 학교에 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것도 고등학교 3학년이 갖춰야 할 자세였다. 자신의 내신과 모의고사 점수를 저울질하며 어느 전형이 내게 유리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지원 대학이 어떤 유형의 시험으로 학생을 거르는지 파악하고 그 시험을 대비해야 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 수리논술과 일반논술, 적성검사 같은 여러 관문에 대한 준비가 교과 공부만큼 필요했다. 칠만 원. 수도권 대학의 수시 전형 지원비가 대개 칠만 원이었다. 학교마다 달랐지만, 1차에서 합격한 10배수 혹은 7배수의 학생만 다음 관문으로 지원한 대학의 강의실에서 자신을 입증하는 시험을 치를 기회가 주어졌다. 1차에서 떨어지면 지원비 칠만 원은 고스란히 환급되었지만, 1차를 통과하면 지원비는 이제 더는 내 것이 아니었다. 복권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때 열 개가량의 수도권 대학에 칠만 원을, 고로 칠십만 원을 넣어 놓고 두뇌 게임을 시작했다. 내 생애 첫 베팅이었다.

수능에 대한 큰 부담감은 아마 모두 학생이 짊어지고 있었던 탓일까. 혹은 수능을 대비하여 보험이 필요했던 마음이었을까 거의 모두가 베팅금액을 달리했을 뿐 수시전형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휴대폰이 지금처럼 똑똑한 시대가 아니었던 그 시절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이면 우리는 모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오종종한 모습으로 교무실 앞을 기웃거렸다. 각자의 담임교사 자리에 앉아 자신의 수험번호를 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마우스를 클릭하였다. 살며시 눈을 뜨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에는 환호의 눈물이 맺히거나 아쉬움의 눈물이 맺혔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모니터에서 그 글귀를 보았을 때의 벅차오르던 순간을 어찌 잊을까. 내 뒤에 서 있던 담임선생님은 환호성을 지르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동료 교사에게 우리 아이를 자랑하는 팔불출 도치 맘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바로 한글 문서를 켜고 내 이름을 합격 대학명과 함께 글씨 크기를 72로 늘려 출력하여 교무실 있는 층 복도에 붙였다. 그곳은 이름하여 ‘명예의 전당’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수능 최저 등급의 조건부 합격이어도, 최종 합격이어도 일단 합격 글자가 붙은 학생의 이름이 걸리는 공간이었다. 전자는 더 힘을 내어 수능까지 잘 치러 최종 합격하길 기원하는 마음, 후자는 축배를 함께 하는 마음으로 각반의 담임교사는 자신의 학생이름을 반듯하게 붙여 주었다. 나는 명예의 전당에 붙여진 내 이름을 보며 삼 년 전 중학교 교무실 복도에 붙어 있던 내 이름을 떠올렸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원치 않던 고등학교 옆에 쓰여 있는 내 이름을 보며 가장 친한 친구와 화장실에 들어가 엉엉 울었던 나는 고대하던 대학교와 함께 있는 이름 석 자를 보며 감정이 복받쳤다.

그 날은 많은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사이가 멀어져 얼굴을 보기 어색해진 친구는 나처럼 축배를 마시게 되었고, 같은 반 친한 친구 둘은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나는 내 옆에 나란히 붙은 친구의 이름 석 자에 축하 인사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그 고민은 불합격한 친구를 위로하는 것에 밀려 나의 기쁨과 함께 잠시 유보하기로 하였다. 나는 삼 년 전 그날 중학교 화장실에서처럼 자율학습 시간 내 그 친구를 안고 눈이 시뻘게지도록 울었다.

“깡민, 축하해! 너 합격했다며. 완전 부럽다.”

쉬는 시간에 다른 반의 친한 친구가 명예의 전당에서 내 이름을 보고 축하하러 와줬다.

“민아야, 넌 합격한 거였어? 난 너도 떨어진 줄 알았어. 축하해, 잘됐다.”

토끼눈이 되어 얼싸안고 함께 울던 친구의 축하를 받으니 더욱 눈물이 났다. 친구와 나는 다른 의미로 다시 또 울었다, 엉엉.

너무 기뻐도, 너무 슬퍼도 터져버리는 감정의 양극에 놓인 눈물과 웃음. 기쁨과 슬픔이 범벅되었던 그날 교복 어깨를 흠씬 적신 눈물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에 그렇게 힘차게 울었던 날이 언제였던가.


***

나경아,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격언은 옛말이 된 것 같아. 아니면 그 말은 변함없이 틀리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데 내가 어른이 되면서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멀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어. 요즘은 그 격언이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살벌한 명제로 바뀌었고, 그게 정말 맞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게 돼.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기쁨을 온전히 함께 축하해주지 못하고, 나의 실패를 누군가에게 망설임 없이 털어놓지 못할 때 내가 진짜 잘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열등감 덩어리인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면서 퍽 씁쓸해지는 마음을 감출 길 없지.

고등학교 삼 학년, 각자의 꿈 혹은 무엇을 꿈꾸는지도 모른 채 ‘대학’이라는 공통된 목표에 몰두하던 작은 교실에서 기쁨과 슬픔이 뒤범벅되었던 우리는 모두 스무 살의 비상을 꿈꾸었지. 딸아, 네가 진정으로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타인과 나누어 함께 울고 웃는 시기를 겪을 때 이 노래를 들어보렴. 엄마는 네가 그런 마음의 여유와 순수함을 엄마보다 길게 누릴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란다.


Track 19.

임재범 [비상] 작사 채정은 작곡 최준영·임재범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 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둔 그 모든 건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지.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 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 거야

힘겨웠던 방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