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영혼을 갈아 넣은 음식이 먹고 싶을 때
“나경아, 맛있어? 특히 여기 소시지 빵을 잘 먹는 것 같아.”
나는 비닐을 조금 내려 아이가 먹기 편하게 손에 쥐여 주며 함께 샤우르마를 먹는 세인에게 말했다.
“아니, 확실히 여기가 실한 것 같아. 내가 모스크바에서 먹어본 샤우르마 중에 여기가 제일 맛있어. 이거 먹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던 시절 생각나. 진짜 그 맛이야.”
입가에 묻은 소스를 휴지로 훔치며 세인이 말한다.
“엇! 나도 여기 샤우르마 먹을 때면 예카테린부르크 생각났는데. 그게 벌써 십 년도 더 된 얘기네. 아직도 그 샤우르마 집 있으려나?”
주르륵 흐르는 소스를 앞섶에 칠칠하지 못하게 묻힌 나는 휴지로 연신 닦으며 언젠가 그 동네를 다시 간다면 꼭 그 샤우르마 집에도 들려야겠단 생각을 했다.
“거기! 너 이리 와봐! 너 몇 반 반장이었지? 반장이란 놈이 자습 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닭꼬치나 들고 다니고 잘하는 짓이다.”
풍채가 좋은 학생부장은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커다란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귀를 잡힌 채 뜨끈한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교무실로 끌려갔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누가 닭꼬치 사 왔어요?”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은 일제히 나와 학생부장을 향해 눈을 돌렸고, 그중 피부가 까무잡잡한 영어 선생님께서 눈치 없이 검정 비닐봉지를 반겼다.
“거 안에 몇 개 들었어?”
학생부장이 내게 묻자 나는 여섯 개라 답했고, 봉지에서 닭꼬치를 꺼내 각 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의 손에 하나씩 쥐여 드렸다. 그런 내 모습은 흡사 꼼장어집에 난데없이 침입한 껌팔이 할머니 같기도 했고, 명함과 과일 사탕 두 개를 껴서 나눠주는 클럽 아르바이트생 같기도 했다. 마지막 제일 빨간 닭꼬치는 학생부장에게 드렸다.
“개수도 딱 맞게 사 왔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자습시간에 겁도 없이 담장을 넘어 사 온 거냐, 응? 석식 먹은 지 삼십 분도 안 지났는데 말이야. 이제 가봐.”
“선생님, 그 맛은 눈물 반, 콧물 반인데요, 아마 눈물 콧물 쏙 빼실 거예요! 안녕히 계세요.”
교무실 문을 닫으며 나는 그가 정수기 앞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걸 확인한 나는 통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은 낡은 본관에서 함께 생활하였고, 3학년은 90도 틀어진 방향으로 세워진 깨끗한 신관에서 공부하였다. 신관 뒤편에는 후문이 있었다. 나는 그 후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해병대 전우회 초소가 있던 사거리에서 길 건너 전봇대가 있던 골목길 어귀에 있는 분식집을 무척 사랑하였다. 한 번도 그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가 떡볶이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분식집 앞 좌판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닭꼬치는 매일 하나씩 먹었다. 그 분식집 닭꼬치는 세 가지 맛이었다. ‘순한맛, 콧물맛, 눈물맛’. 예나 지금이나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는 늘 순한 맛이었지만, 매운 것을 즐기는 친구는 콧물 반, 눈물 반 닭꼬치를 가장 선호하였다. 소스를 발라도 노란 튀김옷의 색이 변치 않는 순한 맛에 비해 콧물 맛과 눈물 맛 소스를 바른 닭꼬치는 불타오르는 착시 효과를 줄 정도로 새빨개졌다. 학생부장이 매운 것을 나처럼 못 먹는지 그 닭꼬치를 주문한 친구처럼 즐기는지 모르지만 아마 전자였다면, 그날 똥구멍이 꽤 아팠을 거다. 그건 우리의 소중한 양식을 가로챈 대가다.
우리의 닭꼬치 사랑은 일 년동안 한 결 같았기에 우리의 치렁치렁한 팔뚝 살의 7할은 닭꼬치 덕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처럼 해병대 초소 앞 닭꼬치는 그 시절 우리의 영혼을 갈아 넣은 ‘소울 푸드(Soul Food)’였다. 졸업이 가까워지는 겨울이 왔을 때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졸업하여도 닭꼬치를 먹으러 학교 앞에서 만나자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제각기 대학물을 먹기 바빠 학교 앞에 발 그림자를 비추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마을버스를 타고 어린 아들과 나란히 좌석에 앉아 학교 앞을 지났다. 나는 혹시나 그 분식집 앞에 아직도 연두색 종이에 순한맛과 눈물맛, 콧물맛 종이가 붙은 좌판이 펼쳐져 있다면 기탄없이 버저를 누르려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 때 한 번도 용기 내지 못했던 눈물 반 콧물 반 닭꼬치를, 아들에게는 순한 맛 닭꼬치를 사주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그곳에는 자전거포가 들어서 있었다.
***
나경아, 엄마 학교 앞에는 단돈 오백 원, 천 원으로 밥으로는 미처 다 채울 수 없는 영역을 채워주는 한 입 거리 음식이 아이들의 입과 마음을 사로잡았어. 초등학교 때는 별과 토끼가 찍힌 동글납작한 달고나가, 중학교 때는 떡꼬치와 김말이가, 고등학교 때는 닭꼬치가, 타국의 대학에서 수학할 때는 러시아식 케밥인 샤우르마가 엄마의 소울푸드가 되어준 것 같아. 되돌아볼 수는 있어도 되돌아갈 수는 없는 그 시절처럼 지금은 맛볼 수 없지만, 그 맛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함빡 묻어나는 음식이 있다는 건 마음속에 나만의 작은 매점을 가진 기분이야. 설령 그 음식들이 지금 맛볼 수 있다 하여도 그 맛은 나지 않을 테지. 이미 그 음식은 맛이 아니라 추억으로 내게 각인된 것들일 테니 말이야.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읊던 엄마는 우리의 삼 년을 추억하며 눈물이 슬슬 차올랐는데 마침 이 대목을 읽었지. ‘새하얀 교복에 새빨간 소스를 흘리며 먹던 야자 시간의 눈물 반 콧물 반 닭꼬치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후배 여러분도 꼭 닭꼬치를 먹으며 공부하세요. 깊은 밤 큰 힘이 되어줄 거예요.’ 그러자 조금 촉촉했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바뀌었고, 닭꼬치의 아이들은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지.
너와 시우가 가끔 소시지 빵을 먹고 싶다며 공원에 가자는 얘기를 할 때면 너희 유년시절의 소울푸드는 그게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네가 조금 더 성장하여 맛보다도 추억으로 먹는 음식이 생기면 이 노래를 들어볼래. 네 마음속 작은 매점에 영혼을 갈아 넣은 음식을 차곡차곡 채울 때 손님으로 줄을 선 엄마가 나의 매점에도 있는 음식을 고를 수 있다면 좋겠구나.
Track 20.
나얼 [언젠가는] 작사 이상은 작곡 이상은·안진우
원곡 이상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이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젊은 날엔 젊음을 잊었고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였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