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34. 카니발 [거위의 꿈]

34. 네 안의 또라이가 꿈틀거릴 때

by 밍구


“엄마, 근데 또라이가 뭐야?”
시우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내게 묻는다.
“또라이? 갑자기 그 말은 왜? 누가 너보고 또라이라고 했어? 어디서 들었어?”
나는 아이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또라이’란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유튜브에서. 나쁜 말이야, 또라이? 무슨 뜻인데?”
시우는 내 반응에 또라이란 말이 더 궁금한지 다시 한번 캐묻는다.
“꼭 나쁜 뜻은 아니지만, 평범하지 않고 남들과는 조금 특이한 사람을 가리킬 때 또라이라고 해. 바보랑 비슷한 뜻인데 멍청한 것보다는 조금 이상한 사람을 뜻해.”
나는 아이에게 또라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될지 몰라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그리고 엄마도 또라이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는 얘기를 덧붙일까 하다가 말았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나는 처음 학업을 쉬었다. 아버지는 학생이 받는 상 중에 가장 대단한 상이 개근상이라 하였다. 초중고 통틀어 12년을 결석 한번 없이 개근하였고, 아버지는 늘 성적 우수상장보다 6년 개근상장과 3년 개근상장을 가장 앞에 스크랩했다. 대학에서의 삼 년 반도 쉼 없이 달려오자 이제 학생으로서의 삶이 고작 6개월 남은 게 아쉽고 두려웠다. 더 솔직한 나의 심정은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뚜렷한 수입 없이 소설가를 꿈꾸는 백수가 되는 게 자신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처럼 높은 토익 점수도. MOS 자격증도, 공모전 수상경력도 하나도 없었을뿐더러 가장 큰 문제는 나 스스로 한번도 취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단 것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 투고 한번이 고작인 내가 정말 작가지망생으로 망망대해에서 작가가 될 가능성은 너무 희박했다. 나는 졸업을 한 학기 유보하며 졸업 이후의 내 삶을 건설적으로 계획하고, 학생으로서의 휴식시간을 누려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6개월은 모래사장에서 움켜진 모래알이 쉬이 내 손을 빠져나가듯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결국 건설적인 계획은 쥐뿔도 하지 못한 채 꽃 피는 삼월은 왔고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일명 코스모스 졸업이라 불리는 여름 졸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전공 수업에서 듣게 된 문학치료사라는 직업군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수업 시간에 그 직업에 대해 언급한 교수님은 마침 내 마음의 TOP3 교수님 중 한 분이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진로상담을 요청했고, 나는 며칠 후 대학생활 중 처음으로 교수님의 방을 찾았다.


600주년기념관 412호.
“이건 도로 가져가게. 자넨 아직 학생이지 않나.”
교수님은 학생회관 매점에서 사 들고 간 작은 주스 병이 올망졸망 들어찬 종이 상자를 보며 말씀하였다. 나는 교수님의 첫마디에 긴장했던 마음도 문 앞에 내려놓고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처럼 책이 차고 넘치는 비좁은 공간에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교수님과 난 마주 앉았다. 꿈의 대화였다. 악몽과 가위에 시달리는 요즘, '꿈'이라는 달콤함을 간직한 현실 속 꿈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문학치료사에 대한 전망은 예상했던 것처럼 향후 깨끗한 비전이 있는 직업이 되지 못하였다. 문학 치료를 전공으로 배운 이들이 아니어도 문학 관련 지식인층이 너무나 두터웠다. 굳이 문학치료사 석사과정 진학을 권하지 않으셨다.
문학치료사를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에 대한 나의 가슴 뛰는, 그러나 솔직히 지금은 자신 없는 꿈에 대해 말씀드렸다. 부모님의 결혼 스토리와 백일장 스토리, 고골의 <코>를 읽고 러시아에 심취하여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야기, 휴학하고선 배운 바둑 이야기 등. 고백하건대 나는 휴학한 지난 학기 동네 바둑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중학생 때 어느 중국영화에서 부하를 잔뜩 거느린 두 수장이 큰 칼을 내려놓고 돌의자에 앉아 바둑 한 판으로 서로의 지략을 겨뤄 싸움을 끝내는 장면을 감명 깊게 보았다. 나는 바둑을 배우면 나의 길이 보일 거란 생각에 끝끝내 대학을 휴학하고 배웠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지긋한 표정으로 한 번도 끊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신 교수님은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살아있는 나를 '문예창작과'라는 아예 생각도 못 했던 길로 이정표를 내주셨다. 교수님은 인과관계에 근거하여 자신의 학문도 정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정의되어야 직성에 풀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지극히 파편적이었으며 그때그때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므로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속에서 작동하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셨다.
“자네는 또라이 기질이 있는 것 같네. 그 기질을 갖고 있더라도 모두가 발현하며 살진 않지. 자네 그 기질이 아깝지 않나? 자네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고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자네는 앞으로도 계속 미치도록 해. 예술을 하려면 미쳐야 해, 알았나? 그리고 임고나 고시는 10 대 1을 넘는 사회와의 싸움이지만, 작가는 나 하나와의 싸움이야. 어떻게 보면 문학이 더 승산 있는 것 아닌가?”
교수님 방을 나와 복도 의자에 풀썩 앉아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종이가방에서 주스를 몇 개나 꺼내 마셨는지 모른다. 교수님, 내가 열렬히 사모했던 그 교수님. 지금도 책투성이 단칸방에서 180cm 넘는 큰 키를 접고 나처럼 흔들리는 또라이들과 꿈의 대화를 나누고 계실지. 이제는 보드카 1L 한 병 사 들고 그 방을 다시 한번 노크하고 싶은데.


***

나경아, 엄마는 네가 내년에 유치원에 입학하여 네 인생의 첫 선생님께서 너를 어떤 아이로 정의할지 참 궁금하구나. 네 오빠가 다섯 살에 처음 단체생활을 하고 상담이 있던 날이었어. 엄마와 단둘이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집단활동이나 역할놀이 등 타인과 어울려 노는 놀이에 무심하다고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었지. 그래서 교사가 바라본 시우가 어떨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마주 앉았지. ‘시우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많이 특이하죠.’라고 운을 떼는 엄마에게 선생님은 ‘아니요, 시우는 특별해요.’라고 말씀해주셨단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자기 주도성이 높은 아이이니 걱정이 아니라 칭찬을 해주셔야 하는 거라며 은근히 나를 나무라기까지 하셨지. 그때 선생님께서 시우를 ‘특별한’ 아이로 만들어주신 이후로 엄마는 단 한번도 네 오빠를 특이하다고 생각지 않게 되었단다. 엄마의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엄마를 ‘또라이’와 ‘꼴통’이라고 불러주신 이후로 그 단어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친근하게 여겨지는지 몰라. 누가 어떤 의미를 불어넣어 불러주는지에 따라 나만의 사전에 그 단어는 다른 뉘앙스로 적히게 되더구나.

딸, 엄마는 엄마가 되면서 마음속 깊이 잠재운 또라이를 실은 아주 많이 사랑해. 그리고 요즘 슬금슬금 그 또라이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지. 엄마는 모두의 마음속에 또라이가 있을 거라 여겨. 그 또라이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용자(勇者)가 아닐까. 너도 네 마음 속 또라이가 꿈틀거릴 때 한번 그 또라이에게 힘을 실어줘 봐.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지, 하며 너 스스로가 놀랄 일을 그 놈이 해낼지 몰라.



Track 34. 카니발(Canival) [거위의 꿈]

작사·작곡 카니발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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