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네가 대학을 졸업할 때
“시우야, 오늘 친구들에게는 여름 방학식이지만, 시우에게는 유치원 졸업식이야. 그러니까 친구들하고 인사 잘하고 와. 엄마가 늦지 않게 교문 앞에서 기다릴게.”
나는 시우의 마지막 유치원 등원 길이 아쉬워 킥보드를 타고 유치원으로 향하는 시우의 뒷모습을 계속 남긴다.
“나도 유치원에 갈래. 시우랑 같이 갈래.”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쉬이 시우를 들여보내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자 나경이 자신도 유치원에 가겠다고 말한다.
“아냐, 나경이는 내년 봄부터 다닐 거야. 시우야, 잘 갔다 와. 울지 말고 친구들이랑 인사 잘하고.”
우는 건 아들이 아니라 바로 초보엄마 나 자신이었다.
졸업(卒業)이란 단어가 나의 모든 것을 규정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국문과 졸업논문을 썼고, 러문과 졸업시험을 쳤고, 서도회 졸업전시회에 참가하였고, 엄마와의 졸업여행 준비를 하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펼쳐 놓았던 이모저모를 갈무리하느라 그해 봄은 꽃이 피는 것도 모르고 지났을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다.
오케스트라의 큰 축제는 가을 연주회였고, 나는 2학년 때 단 한 번 연주회에 참여했다. 그해는 마침 오케스트라 20주년 기념 연주회였던 터라 졸업한 선배들도 찬조연주를 하였을 만큼 성대하였다. 2학년 여름방학을 연주회 준비로 통째로 불살랐던 것은 지금 돌이켜 보면 내게 더없이 운 좋은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졸업이라는 타이틀로 한 번씩 어루만져주었지만, 오케스트라만큼은 그런 것이 없어 아쉬움을 달래고자 학교 앞 작은 카페를 빌려 우리들의 소연주회를 열었다. 새내기시절 비올라로 <작은별>을 버스킹하였던 나는 소연주회에서 조 히사이시의 <Summer>를 첼로를 연주하였고, 그걸 끝으로 나의 똥지게는 긴 동면에 들어갔다.
서도회는 매해 봄, 가을에 춘계와 추계전시회를 열었고, 나는 해마다 전시회 일정이 다가오면 동기들과 함께 학년에 맞는 법문을 써내려 갔다. 졸업전시회는 법문과 별개로 창작 작품을 내야 했고, 나는 그때 그림처럼 쓴 ‘靑春漂流(청춘표류)’ 넉 자를 푸른 표구로 걸었다. 나의 푸르른 봄날이 어데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내 마음 같은 그 글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제목이었다. 미대생도 아니었던 나는 서도회 덕분에 매년 전시회의 기쁨을 맛보았고, 그때마다 꽃과 과자, 케이크를 들고 전시회장을 찾아와준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국문과 졸업논문은 현대소설 세 편을 분석하여 [상징과 알레고리의 소설적 장치를 통해 본 가상현실 속 현대 사회]라는 거창한 제목의 소 논문을 20쪽 썼다. 쓰면서 서평을 하는 이들이 대단하단 생각을 처음 해봤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웠던 건 역시나 러문과 졸업시험이었다. 결국 어학시험 대체 과제로 나는 안나 카레니나 한 면을 번역하는 깜지를 써야 했다. 15가지의 러시아 졸업시험문제에서도 나는 다행히 톨스토이, 도스트옙스키, 고골, 체호프 소설의 주요 주제 항목만 골라서 서술하여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졸업 앨범 신청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한 학기 휴학하는 사이 성실한 나의 친구들은 이미 졸업을 많이 했고, 혹은 취업 준비를 하며 나보다 졸업이 늦어졌다. 대학 친구 중 무더운 팔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졸업을 하는 이는 결국 나뿐이었다. 두꺼운 졸업 앨범 속 무수한 얼굴 중 아는 얼굴이 내 얼굴 단 하나라는 건 어쩐지 많이 슬픈 일 같아서 나는 고심 끝에 졸업 앨범을 신청하지 않았다.
나의 코스모스 졸업식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민아는 이제 어디 다니는 거야? 취직은 한 거지?”
명절에만 얼굴을 뵙던 큰 엄마가 졸업식을 마치고 식당에서 큰 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 이후의 또 다른 소속이 정해져 있는 이만 축하받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아뇨. 저 글 쓰려고요. 그전에 일단 엄마와 졸업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에요. 저 뒷바라지하시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제가 본 유럽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당찼다. 졸업 이후의 진로가 어찌 되었든 졸업은 16년간 학생으로서 살아온 나를, 그리고 나의 배움에 무조건적인 지원을 해주신 부모님께서 축하받아야 할 날이었다. 표현이 서툰 나는 감사하다는 말 대신 엄마에게 학사모를 씌워 드렸다. 졸업식이 끝나자 다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나는 무지갯빛 우산을 펼쳐 그녀와 함께 교정을 걸었다.
정든 학교여, 안녕.
***
나경아, 너의 가방끈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아직 유치원 입학도 하지 않은 네가 검은색 학사모를 쓰고 목에 새하얀 리본을 한 졸업식 모습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구나. 대학교 졸업은 더욱 특별하게 와 닿았던 것 같아. 초중고와 달리 내 의지와 능력으로 선택한 학교였고, 입학 후 학교 내에서의 모든 행보가 내 선택들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내 선택과 책임으로 이루어진 시간과 공간이었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 정작 학교 다닐 때는 관심도 없었는데 졸업하고 나니 제마다의 학교 잠바를 입고 지하철을 탄 대학생들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몰라.
작년 한 해 코로나로 네 오빠가 등원 수업 대신 원격수업이란 새로운 형태로 수업하는 것을 지켜보며 배움의 전당을 매일 오가던 시절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어. 그러나 또 역설적이게도 꼭 발품을 팔아 가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다양한 형태로 무수한 영역을 배울 수 있게 되었으니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학생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건 내겐 기쁜 소식이기도 하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학생증을 소지했던 그곳을 졸업하는 날 너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이 노래를 함께 듣길 추천할게.
Track 35. 전람회 [졸업]
작사·작곡 김동률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 지으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 봐
근심스런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우리의 꿈도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힘들기만 한 나의 나날들이 살아온 만큼 다시 흐를 때
문득 뒤돌아 보겠지
바래져가는 나의 꿈을 찾으려했을 때
생각하겠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우리들의 추억들을 (그 어린 날들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