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36. 이상은 [지도에 없는 마을]

36. 네가 나와 단둘이하는 여행을 계획할 때

by 밍구



“나경아, 나가기 전에 엄마랑 화장실에 가서 쉬 한 번 누자.”
나는 화장실 앞에서 기저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을 채근한다.
“싫어. 안 마려워. 아까 쉬했잖아. 엄마는 왜 자꾸 쉬 싸래?”
딸아이는 자꾸만 소변을 보라는 엄마가 귀찮다는 어투로 쏘아붙인다.
“밖에 나가면 화장실 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 엄마도 또 한 번 쉬 싸고 나갈 거야. 예전에 키다리 할머니도 쉬 안 싸고 나가서 바지에 쉬 쌀 뻔 한 적 있어, 진짜로.”
나는 애꿎은 할머니까지 끌어와 기어이 딸아이를 다시 변기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엄마, 나랑 여행 갈래? 저런 거 백날 봐봤자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내가 가이드 하는 대신 여행경비는 엄마가 대주는 걸로, 어때?”
코스모스 졸업식을 위해 대학교에서 학위복을 대여해온 초여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행프로그램을 애청하는 엄마에게 내가 넌지시 물었다. 동아리 내 비밀 연애를 하는 이들의 속삭임보다도 은밀하고, 독재자의 눈짓보다도 더욱 확고한 베갯머리송사. 다음날 바로 여행의 청신호가 켜졌다.
안방 화장대 위에 학교 도서관에서 대여한 여행책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나라에 상관없이 가고 싶은 도시 위주로 선택하게끔 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꼭 봐야 할 것과 먹어야 할 것, 사야 할 것을 공책에 적으며 우리만의 여행책자를 새로 써내려갔다. 엄마와 앞 다투어 책을 읽으며 내실을 탄탄히 다지는 사이에 사방팔방 흩어져 있던 유럽의 각 도시가 비행기와 기차로 긴밀히 이어져서 사통팔달 우리만의 유럽여행지도가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각국의 대사관의 연락처와 약도를 짜깁기한 비상 연락망을 엄마와 내 배낭에 1부씩 챙겼다. 아빠 대신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막중했다. 여행에서 나는 엄마에게 강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여행 출발일은 추석 다음 날이었다. 가득 찬 보름달이 손톱만큼 줄어든 날 엄마와 나는 아직도 달이 찬 서쪽 나라로 떠났다.


여행 첫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유스호스텔. 샤워하고 나오자 엄마가 햇반과 여행용 볶음 고추장, 그리고 김으로 든든한 아침상을 차려놓았다. 여행지에서 바랄 수 없었던 엄마의 따스한 보살핌과 관심이 엄마와의 동행이기에 가능하였다. 여행 전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주자던 다짐은 사라지고 도로 철부지 어린 딸이 되어 아침밥을 얻어 먹었다.
마드리드 터미널에서 몸을 실은 톨레도행 버스는 1시간 반가량 쉼 없이 달려 우리를 톨레도에 내려놓았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완만히 펼쳐진 길을 걷는 동안 유쾌함만 가득했다. 톨레도의 전체적인 색채는 황토색이었지만, 오래된 지붕과 벽돌은 주홍빛이 돌기도 하였다. 톨레도의 정취는 꼭 극심한 가뭄에 쩍쩍 갈라진 우리네 논두렁 같으면서도 색이 바랜 영자신문을 연상케 했다.
“민아야, 화장실, 화장실 어디 있는지 좀 물어봐!”
엄마가 불편한 자세를 취하며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톨레도의 이국적인 풍경에 넋을 놓고 있던 나는 그때서야 심각한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마와 콧잔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엄마는 가랑이를 비비 꼰 채 힘겨운 사투 중이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톨레도 여행은 화장실 찾기로 대체되었다. 계획도시처럼 격자무늬 형태의 곧은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로가 하나 쭉 뻗어있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톨레도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매력인 중세도시였다. 아직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도 받지 못한 상태였고,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의 지도는 너무 조악하여 그 축소된 지도에서 우리의 현 위치를 찾기가 더욱 힘들었다. 절대적인 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갖고 싶었던 개미 나라의 개미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땅속의 꼬부랑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개미에게는 일종의 규칙이라든가 아니면 길마다 자신들만의 기호가 있겠지? 그 순간 떠오르는 여행자들의 화장실 기호 ‘M’! 그 길로 나는 맥도날드 찾기에 주력을 다했다.
한 시간가량의 방황 끝에 드디어 발견한 맥도날드에서 엄마는 모든 근심을 다 풀 수 있었다. 어제 비행기 안에서 주구장창 먹었던 기내식이 밤새 부대꼈다던 엄마는 오늘 아침 나 몰래 관장까지 한 사실을 고백했다. 친구였다면 짜증을 부리고, 면박을 주었을 텐데 엄마이기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를 두고 딸과의 첫 유럽여행이니 엄마가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므로 몸이 말을 잘 안 들은 것인데 거기에 딸의 퉁바리까지 보태졌다면, 엄마는 어디에다 하소연도 못하는 유럽 땅에서 서러운 마음이 눈물로 터져 나올지도 몰랐다.


운동화 끈을 바짝 조이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찬란한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골목을 누빌 수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마음에 드는 상점에는 서슴없이 들어가 구경하는 여행객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그 중 나의 지갑을 열게 만든 상점은 다름 아닌 사탕 가게였다. 헨젤과 그레텔을 유혹하는 과자 집에서 풍겼을 법한 달곰한 향이 스멀스멀 우리를 유혹하는 바람에 보기만 하여도 입안이 쪼글쪼글해지는 것 같은 알록달록한 막대사탕을 무려 여섯 개나 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의 묵직한 사탕을 물고 좋아라하는 엄마를 마주하자 어린 시절 내게 사탕을 사주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환전해 온 화폐가 여러 가지라 복잡하다는 핑계로 여행의 경제권도 내가 쥔 터라 나는 퍽 엄마와 역할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꼬불꼬불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려도 캐러멜과 바닐라가 구불구불 섞인 막대사탕을 물고 있어 마냥 행복했다.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받은 지도를 반으로 턱 접어 가방에 넣고, 엄마와 팔짱을 끼고 발길이 향하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다. 양 갈래 길에서는 바닥의 돌들이 더욱 맨들맨들한 길을 택하며…….
화장실을 찾기 위해 톨레도를 동서로 두 번이나 가로 지르고, 성벽을 따라 삥 돌아 나오니 본디 톨레도의 첫 관문인 비사그라문이 나왔다. 엄마와 난 미로와도 같았던 톨레도를 처음부터 화살표 반대방향으로 들어간 꼴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첫 번째 여행지에서부터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주 힘겹지만 즐겁게 톨레도 구석구석에 발도장을 찍고 나온 셈이다. 누군가가 톨레도 여행에 팁을 좀 알려달라고 한다면, 난 거침없이 이렇게 말해줄 테다.


“톨레도 여행에 앞서 터미널에 도착하면 쥐어짜서라도 볼일을 보고 들어가세요. 굳이 인포에서 지도를 받아볼 필요가 없어요. 대신 아주 달달한 향기를 솔솔 피워내는 사탕 가게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사세요. 민트 향이든 계피 향이든 어떤 것도 상관없지만 꼭, 그 사탕을 다 먹을 때까지 톨레도의 골목을 빠져나오지 마세요!”


***

나경아,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청토마'라 부르던 청록색 갤로퍼가 한 대 자리하고 있었어. 키다리 할머니는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도 한계령을 넘는 겁 없는 베스트드라이버였지. 내가 대학에 들어가며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막걸리 할아버지가 함께 운전시험을 보았으니 가족여행의 운전석에는 항상 과감한 엄마가, 조수석에는 술이 거나한 아빠가 타고 계셨더랬지. 그러했던 엄마가 오십여 일간 딸 하나 믿고 말도 안 통하는 유럽여행을 남편도 없이 떠난 거지. 쉰 살에 처음 유럽대륙을 밟은 엄마를 보며 나는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떠올렸어. 일명 ‘끼인 세대’에 속한 엄마가 누리지 못한 것을 같은 여자로서 조금이나마 내가 보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나침반 오빠와의 첫 배낭여행에서 엄마를 그렸듯 나의 엄마 또한 멋진 풍경을 볼 때면 거동이 불편해진 당신의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짓곤 하셨지. 딸들 마음은 그런가 봐.
아빠가 용돈을 넉넉히 주셨는데도 나는 그 여행에서 왜 그리 퍽퍽하게 굴었는지. 한 번뿐일 유럽여행에서 좋은 레스토랑에도 자주 모시고 가고 기념품도 잔뜩 사라고 할 걸 사진을 보니 매번 핫도그랑 샌드위치뿐인 거 있지. 그래도 뭐가 그리 좋은지 사진 속 네 할머니 얼굴에는 웃음이 가시지 않더구나.
딸, 우리가 이십 년 후에는 세 모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열심히 돈 모을게. 경비는 엄마가 다 댈 테니 네가 한 번 계획해줘. 지도에 없는 마을을 우리 셋이 함께 찾아가보자, 막대사탕 서른 개 준비해서.



Track 36.
이상은 [지도에 없는 마을] 작사·작곡 이상은

조그만 마을 돌담길
아이들 웃으며 놀고
담장 아래 작은 꽃
평화로운 낮잠을 자고 있는
바람이 이끄는 대로
구름이 가는 길대로
나는야 꿈 따라 헤맸지만
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대와 가고 싶은 곳
조그만 마을 오솔길
그대에게 물으니 말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걷고 싶어 그대와

잃었던 거라 생각해도
마음에 행선지만 바꾸면 돼
어디에나 있는 곳 어린 시절 함께 살던 곳
바람이 노래해 주고 별들이 그림 그리지
지도에 없는 조그만 마을
비운 만큼 행복하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그대와 살고 싶은 곳
그대에게 물으니 말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웃고 싶어 그대와

그대에게 물으니 말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웃고 싶어 그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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