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37. 안재욱 [친구]

37. 세상에 꺾여도 친구가 나를 알아줄 때

by 밍구


“엄마는 좋겠다, 학교 안 가서. 내가 학교에 가 있을 때 엄마는 집에서 뭐 해?”
시우가 교복을 입으며 엄마와 제 동생이 부럽다는 눈초리로 말한다.
“엄마는 밀린 집안일 하지. 청소하고 빨래 개키고, 나경이 아침먹이고, 레고방 정리하다 보면 금세 시우 데리러 갈 시간이야. 엄마는 학교 다니는 시우가 부러운걸.”
나는 일부러 집안일을 세부적으로 열거하며 오전 시간의 바쁨을 토로한다.
“그래? 내 생각에 집안일은 안 어려운 거 같아. 그럼 엄마도 나랑 같이 학교 다닐래? 집안일은 학교 갔다 와서 나랑 같이하자, 어때?”
아들은 진심으로 내게 동급생이 되길 권한다.
“내가 학교 갈래. 내가 시우랑 같이 학교 다닐래. 엄마는 집안일 해.”
유치원도 취학 전인 네 살배기 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든다.


초가을에 떠났던 졸업여행을 마치자 겨울 문턱에 다다랐다. 학생이었다면 옷을 단디 입고 일찍 해가 진 캠퍼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친한 이 몇몇과 대학로에 내려와 꼼장어에 소주 한잔하며 어물쩍 다가오고 있는 기말과제와 겨울방학에 대해 얘기했을 십일월이었다. 그러나 졸업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소속’의 시간과 공간이었다. 아무것에 속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건 매일 몸을 바삐 움직였던 내게는 생각보다 더욱 힘들었다. 그 시간 나와 가장 가까이 많은 시간을 함께한 건 깜상이였다. 늘 동트기 전 집을 나서 늦은 밤 들어오던 주인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는 반려동물의 일상이 내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서 귀가하실 시간이 되면 자주 집을 나서 친구를 만났다.
그 시절의 친구들도 아직 자신을 갈고닦거나 나처럼 방황했다. 우리 모두 주머니 형편은 넉넉지 못했고, 또렷한 빛을 좇아 흔들림 없이 가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들 한 번 더 자신에게 걸맞은 옷을 걸치기 위해 열심히 품을 팔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 옷이 어떤 모양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어 두 손을 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울음이 생생하다. 수영장을 가시는 엄마가 내게 비 소식이 있으니 점심 먹기 전에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걷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나는 알았다 하고 깜상과 지하에 내려가 소설책을 읽었다. 심취하여 읽다가 문득 비 오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고, 반지하 조그마한 창문을 열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 비 맞은 빨래를 걷었다. 그리고 그 새하얀 아버지의 팬티와 엄마의 손수건을 2층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며 같이 엎어져 엉엉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속절없이 울었다. 깜상이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핥아주었다.
‘집에서 뭐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거 하나 시킨 것도 똑바로 못 했어? 으이구.’
비단 엄마만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런 마음과 시선으로 날 나무라는 것 같았다. 뭐 하는 것도 없는 나를 모두 안쓰럽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것만 같아 점점 움츠려 들었다. 또라이의 현주소는 다름 아닌 ‘백수’였고, 하루 세끼 집에서 밥만 축내는 ‘삼식이’였다. 점차 친구들과의 술 약속도 멀리하게 되었고, 나는 나를 전혀 모르는 구성원과의 일시적인 프로젝트인 문학캠프나 문화원 수업 등을 전전하며 일 년을 탕진했다. 다시 여름이 돌아왔고, 나는 우울한 스물다섯 살도 반을 흘렸다.


“민아야, 지금 전철 타고 선생님 작업실에 와라. 주소 받아 적어.”
선생님의 부름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오랜만에 4호선 전철을 타고 서울에 갔다. 고쌤과의 인연은 대학교 2학년 소설 창작 연습 수업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수업은 고전 문학이 강했던 우리 학교 국문과의 전통을 깨는 유일한 창작 실기 수업이었다. 나는 그 수업을 통해 나를 시험해보고, 글쓰기 가르침을 받고 나와 같은 꿈을 꾸는 문우를 사귀고 싶었다. 수업은 중간과 기말고사 대신 자서전과 단편소설로 대체되었고, 나는 좋은 점수로 수업을 마쳤다. 그리고 없어졌던 수업이 2년 후에 다시 개설되었고, 나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청강하며 그의 가르침을 또 한 번 받았다. 졸업 후 별다른 성과 없이 이렇다 할 글도 쓰지 않고 자신감만 바닥을 치고 있는 나의 뒷덜미를 잡고 고쌤은 쑥 끄집어내 주셨다.
“하하. 넌 이제 세상을 소설을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보게 될 거다.”
졸업하고 꼬박 일 년만이었다. 나는 생애 첫 장편소설을 써서 청소년 문학상에 공모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이 고배를 마셨지만, 그것은 결코 쓰지 않았고 대신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200자 원고지 700매에 달하는 나의 첫 청소년소설 <주유소>와 교정 밖에서도 나를 채찍질하여 펜을 잡게 하여 주시는 스승님, 그리고 서슴없이 고급 독자가 되어 긴 글의 피드백을 남겨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좋아하던 값비싼 소 곱창과 소주를 기탄없이 사주던 친구들이 있어 꺾이지 않을 힘을 얻었다.


***

나경아, 현대문학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말해주셨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암흑기라도 바꿔 말하지만, 자신은 그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어두웠던 시기에 우리 문인들은 어둠 속에 침잠하여 더욱 치열하게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빛나는 작품을 토해냈다고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엄마는 불행한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지.
인생의 아리랑 곡선이란 걸 들어본 적 있니? 내 인생을 긴 수직선이라 생각하고 그 위에 내 삶의 기쁘거나 행복했던 사건과 슬프거나 힘들었던 사건을 나열하면 신기하게도 아리랑처럼 너울거리는 곡선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란다. 스물넷에서 스물다섯으로 넘어오는 이 시기가 엄마의 아리랑 곡선에서 낮은 지점 어딘가였고, 비록 몸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지난하고 가혹했던 일 년이었어. 아마 네 인생에도 이런 시기는 올 수 있고, 잘 헤쳐나가는 힘이 있다면 다시금 너의 아리랑은 높은 곳에 좌표를 찍기 위에 바닥을 치고 올라갈 거야. 그리고 이 시기에 너를 믿어주고, 네게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있다면, 그때는 칠흑처럼 느껴질지라도 그 구간을 빠져나오고 보면 그렇게 어두웠던 나날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만약 네가 이러한 시기에 웅크리고 있을 때 술 한 잔 사주겠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면 이 노래를 그이와 같이 들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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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37.
안재욱 [친구] 작사 심현보 작곡 Liu Zhi Hong,
원곡 주화건[붕우]

괜스레 힘든 날 턱없이 전화해
말없이 울어도 오래 들어주던 너
늘 곁에 있으니 모르고 지냈어
고맙고 미안한 마음들

사랑이 날 떠날 땐 내 어깰 두드리며
보낼 줄 알아야 시작도 안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가끔 서운케 해도
못 믿을 이 세상 너와 난 믿잖니

겁 없이 달래도 철없이 좋았던
그 시절 그래도 함께여서 좋았어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게 변해도
그대로 있어준 친구여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어느 곳에 있어도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돼준 너
늘 푸른 나무처럼 항상 변하지 않을
널 얻은 이 세상 그걸로 충분해
내 삶이 하나 듯 친구도 하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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