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38. 성시경 [제주도의 푸른밤]

38. 네가 직장인이 되어 첫 월급을 받을 때

by 밍구



“엄마, 오늘 아빠 빨리 와?”
하루의 마지막 관문인 아이들 목욕시키기를 끝내자 딸아이가 말간 얼굴로 내게 묻는다.
“아니, 아빠는 나경이랑 시우 코 자면 오시지. 이제 두 밤만 더 자면 주말이니깐 주말에 아빠랑 많이 놀아.”
나는 딸아이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며 어린 딸의 마음도 어루만진다.
“힝, 아빠 보고 싶은데. 아빠는 왜 맨날 늦어? 아빠랑 전화하고 싶어. 전화 할래.”
아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딸의 아빠 타령이 매일 밤 낯설기 그지없다.


“너 여행 좋아하지? 요즘은 글 쓰겠다고 방안에 틀어박히는 시대가 아니야. 직장 생활하면서 견문을 넓혀야 사람도 겪고, 세상도 보이는 거야. 여기 이력서 한 번 넣어봐라.”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장편소설을 한 편 쓰자 자신감도 붙고 공모전 일정에 따라 새로운 소설을 써볼 요량이었다. 그런 내게 고쌤은 또다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사진관에 가서 반명함 사진을 찍었고, 스물다섯이 두 달 남았을 때 직장인이 되었다.
첫 직장 생활은 가산디지털에서 사람과 제주도를 잇는 일을 했다. 출판부와 여행부, 관리부서로 나뉜 소규모 회사였기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처럼 행동하고 책임을 졌다. 내가 몸담았던 부서는 출판부로 나는 글을 썼고, 대리석(석 대리님)은 사진을 찍었고, 사수는 광고를 따와 기내지라는 결과물을 냈다. 기자가 나 혼자였기에 인터뷰와 기사 작성 모든 게 처음이었지만 길라잡이가 없었고,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신방과 전공수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글은 그냥 짜깁기해도 되는 형식적인 것이고, 잡지의 생명은 광고라는 주의의 대표는 공들여 기사를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표는 첫 회식에서 내게 직장인 처세서를 건네며 독후감을 제출하라 하였고, 다음날 나는 그에게 주홍색 시집을 선물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당돌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음 달 취재하기로 한 이지기획 강민아 기자인데요. 혹시 취재 날에 저희가 몸 누일 수 있는 방 한 칸 있나요?”
입사하여 처음 취재처에 전화하여 하루 숙박을 문의하는 내 전화를 엿듣고 사무실의 모두가 깔깔거렸다.
“민아야, 가서 꼭 네 몸 누일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글로 잘 써 와. 풋풋하다, 사회초년생다워.”
여행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김 부장이 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뻔뻔하지 못했던 나는 취재처에 전화하여 아쉬운 소리나 생색내는 일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어려움을 무마시키는 것은 매달 가는 제주 출장이었다. 나보다 열네 살 많은 사수와 열한 살 많은 사진작가와 삼인 일조로 제주도의 숨은 명소와 맛집을 취재하는 것은 일이라기보다 여행 같았다. 직장 내 상사였기에 불편할 만도 한데 다들 노총각이라 그런지 격의 없이 잘 지냈다. 어딘가 부족하고 엉뚱한 출판부 삼인방은 월말이면 회의실 벽에 붙어 있는 제주도 지도를 보며 다음 달 출장 일정을 짰다. 제주 출장 후 빠듯한 마감일정 후 인쇄소 감리, 기내지 우편 작업, 다시 제주 취재 일정 짜기 후 출장을 다니면 한 달은 눈 깜짝할 새 지났다. 우리의 발자취와 결과물은 매달 한 권의 잡지가 되어 사무실 진열장을 천천히 채워갔다.


회사가 원체 소규모였기에 자주 간식을 시켜 먹으며 수다를 떨고 편안한 분위기로 일했다. 기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내가 글로 표현한 것과 꼭 맞는 사진을 얹어 디자인되는 작업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잡지가 나오면 기사가 무척 마음에 든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이들 덕분에 신바람이 났다. 기내지에 실리는 인터뷰와 별개로 빨간 펜이 그어지지 않는 나의 글을 쓰고 싶어서 안 쓰던 시도 쓰고, 제주 여행기도 끼적이기 시작했다. 매달 마감이 있고 컨펌을 받는 글쓰기가 처음이어서 압박이 되면서도 새로운 자극이었다. 특히 대리석과 함께 취재 후 서로의 글과 사진을 공개하여 바라본 것이 일치하였을 때의 희열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작업들을 통해 여행 에세이의 꿈을 키웠고,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대리석에게서 그의 첫 니콘 카메라를 사서 사진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사진 한 장이 갖는 힘이 한 장의 글보다 셀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박봉이었지만, 인터뷰에 매력을 느끼고 매달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경험하고 글로 푸는 것이 즐거웠다. 월급날보다 더 기대되고 행복한 날(인쇄소 가는 날)이 있다는 건 직장인으로서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었다. 그곳은 88만 원의 월급만으로도 나를 사로잡기 충분한 직장이었다. 그러나 내가 직장인 처세서를 읽어도, 대표가 시집을 읽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로 인해 나는 다섯 달만에 퇴사하였다.


***

나경아, 네게도 직장인이 되는 기회가 찾아오겠지? 엄마는 직장생활에 대한 꿈은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잡았던 여행 잡지 회사가 엄마에게는 하나도 빠짐없는 꿈의 직장이었더구나. 직장생활을 할 때도 엄마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인터뷰를 하였고, 출장 가는 날이면 등산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질끈 묶었어. 제주도는 누구든 여행을 꿈꾸고 한 달가량을 살아볼까 고민해보는 참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섬이야. 엄마는 그곳으로 출장을 가던 시절이 참 아련하면서도 아쉽구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시절 왜 그리 고집을 부렸는지 몰라. 조금만 자세를 낮췄다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제야 들어. 그렇지만 그때로 돌아가도 나는 또다시 그렇게 겁 없이 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졌을 거야. 엄마의 친한 친구가 말하는 ‘곤조(고집이 세고 고약한 성질)’가 내 전부였거든. 막걸리 할아버지가 약주를 드시곤 항상 내게 말씀하셨어. 세상은 대나무보다 버드나무처럼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너무 맑은 물보다는 조금 더러운 물이 더 많은 물고기를 품을 수 있다고 말이야. 엄마는 너무 뻣뻣한 사람이라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나와 달랐으면 좋겠구나.
딸아, 가끔은 눈 감고 지나가도 괜찮아. 가끔은 너를 숙이고, 또 조금은 내 정수리를 누군가 꾹 눌러도 아랫입술 꽉 물고 버텨. 어떠한 것이 너를 잠시 가리거나 더럽히더라고 결국 그런 것들은 다 씻겨지고 네 온전한 모습이 남을 거니까. 너와 제주도를 간다면 엄마가 취재하며 가장 좋았던 그곳에서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구나.



Track 38.
성시경 [제주도의 푸른밤] 작사·작곡 최성원 원곡 최성원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 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로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
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신혼부부 밀려와 똑같은 사진 찍기 구경하며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메가 살고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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