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네가 포기를 선언해야 할 때
"시우야, 시우야!"
나는 쇼파에 앉아 시우의 등을 문지르며 아이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왜 엄마?"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사뭇 영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슴 벅참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냥. 우리 아들 멋있어서."
나는 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칫, 거짓말! 나 엄마가 무슨 말 하려 했는지 다 알거든? 나 사랑한다고 속으로 말한 거지? 내 말 맞지?"
아들은 다 아는데 거짓말하는 엄마가 어설프다는 듯 핀잔조로 말했다.
"어머!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들렸어?"
나는 시우의 대답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박진희 선생님이 그랬어. 엄마가 갑자기 내 이름 부르고 아무 말도 안하면 그건 사랑한다고 말한 거라고. 근데 진짜 엄마가 선생님 말대로 그랬어, 방금. 그리고 선생님이 또 말해줬어. 포기는 김치할 때 쓰는 말이래. 엄마는 김치 안하니까 쓸 일 없겠다. 엄마는 포기라는 말 하면 안돼, 알았지?"
어릴 적부터 욕심이 많은 둘째였다. 오빠가 흥미 없어 하는 학원의 가방을 고쳐 메고 내가 다녔다. 무엇이든 시작했다면 끝장을 봐야하는 고집과 변하는 것에 대한 지독한 혐오가 더해져 배움에 있어서는 좋은 결실을 많이 맺었고, 인간관계에서는 실망도 더러했고, 간은 매일 술에 절여 축축했다.
나의 모교는 학부제 대학이어서 1학년 때는 전공 수업을 듣지 않고 1학년 필수 수업과 교양수업을 이수하고 전공을 선택하는 체제였다. 인문학부생이었던 나는 학부 내 다양한 전공이 있었지만, 다른 전공분야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국어국문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2학년 때 우랄대에서의 일 년이 확정되며 그곳에서 이수한 러시아어 수업을 교양이 아닌 전공으로 인정받기 위해 복수전공을 신청하고 러시아에 다녀왔다. 이제 내게 대학생으로 주어진 시간은 일 년뿐이었다. 나는 무언가 아쉬웠고 그 감정의 원천이 신문기자와 방송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로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제3전공으로 신문방송학과를 신청하여 4학년 1학기 때 신방과 전공수업에 주력하였다. 복수전공을 하면 단일전공일 때보다 이수 학점 비율이 낮아져서 해볼만 한 도전이었다. 특히 매 방학 때면 좋아하던 국문과 교수님의 계절 학기 강좌가 개설되어 무턱대고 그것을 따라 다녔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1학년은 교양 수업, 2학년은 국문과, 3학년은 노문과, 4학년 1학기는 신방과 전공수업에 주력하며 전공 시수를 맞춰나갔다.
그러나 나는 고작 한 학기만에 제3전공 포기 신청서를 썼다. 그냥 관둔 것과는 구분 지어 '포기'라는 단어를 쓰려면 그만큼 노력했어야 하고, 도중에 그만두는 것으로 말미암은 손해와 상실감이 수반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부였던 1, 2전공과 달리 신문방송은 사회과학부에 속해 있었으므로 강의실과 건물조차 내게는 낯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교수의 이름과 더 낮선 전공수업명, 강의실에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도 모두 낯설었던 미디어 관련 수업. 그 수업 중 내게 결정타를 날린 전공수업은 기사작성 수업이었다. 호흡이 길고 묘사가 많은 내 글은 기사글로 보았을 때 온통 군더더기였다. 속도싸움에서도 달팽이에게 데스크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문과대와는 다른 사회과학대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한몫했다. 설령 내가 제3전공을 무사히 이수하고, 이곳 취업시장에 나간다 하여도 나는 즐겁게 그곳 생활을 해나갈 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애 첫 포기를 선언했다. 아마 도전도 하지 않았다면 방송작가와 라디오작가에 미련이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 학기의 경험과 시간이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 속 템포와 글쓰기를 해나가는 이들이란 생각을 한다.
대학생활의 꽃은 2학년이라고들 하였다. 새내기 시절에는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며 떠밀려 다니기 일쑤였고, 새로운 관계와 학교에 적응하기에 일 년은 정말 짧았고 서툴렀다. 2학년이 되니 동아리에서 후배를 받아 밥을 사주며 조금 우쭐거리기도 하고, 배정받은 전공 공부를 진지하게 하며 지성인이 되는 것 같은 폼도 잡았다. 3학년부터 서서히 취업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압박을 받아 마음 편히 캠퍼스를 누리지 못할 거라 하여 나는 일 년을 송두리째 러시아에 투자했다. 그곳에서는 대학교 3학년의 불편하고 혹독한 시간 개념이 무너질 거라 여겼다. 그리고 적중했다. 어찌보면 나는 대학교 2학년을 두 번 겪은 것처럼 두 번의 꽃이 피었다. 그렇기에 4학년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암담하고 힘들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중요한 한 학기를 통째로 새로운 도전과 포기에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포기한다고 해서 과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그제서야 처음 배웠다. 나의 선택이 잘못될 수 있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과감하게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설 줄 아는 것도 용기라는 것을. 그때부터 옹졸하고 편협했던 마음에 변하는 것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고, 중간에 사그라드는 것을 아주 조금 용인해줄 아량이 생긴 것 같다. 또한, 포기로 인해 나는 내가 얼마나 인문학부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고, 단 한 학기 남은 대학생활이 아쉬워서 나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여 휴학을 신청했다.
***
나경아, 엄마는 네가 제 고집을 못 이겨서 얼굴을 가리고 큰소리로 엉엉 울 때면 어린 시절의 나와 똑같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아. 아직 네 살밖에 안 되었지만, 혼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여기는 너는 요즘 스스로를 언니라고 부르지. 엄마는 너의 그런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든단다. 엄마는 네가 성장하며 끈기 없는 시작과 마음만 앞서는 욕심은 가릴 줄 아는 혜안도 기르길 바라. 근데 그건 돌이켜보면 부모의 영향도 참 큰 것 같아. 네가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그걸 북돋아주고 지원해줘야 네가 무언가의 욕심을 더 크게 키워나갈 수 있거든. 그건 엄마가 옆에서 잘 도와줄게.
엄마의 성미는 시작보다 포기가 더 어려웠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너도 끝까지 못 할 바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나와 같다면 포기를 선언하는 게 쉽지 않을지 몰라. 그때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포기하여도 도전과 시작의 발자취는 네게 어떤 의미로든 남게 될 테니 말야. 네가 포기라는 단어를 김장철이 아닌 때에 입에 담는다면 엄마는 무조건 포기하지말라는 말 대신 지긋이 네 마음의 여로를 들여다보도록 할게. 분명 포기를 선언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거든.
Track 33. 황규영 [나는 문제 없어]
작사 황규영 작곡 김성호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 곳을 잃어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 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뿐야 넘어지진 않을거야
나는 문제 없어
짧은 하루에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다 때론 어려운 시련에 나의 갈곳을 잃어가고
내가 꿈꾸던 사랑도 언제나 같은 자리야
시계추처럼 흔들린 나의 어릴 적 소망들도
그렇게 돌아보지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나에겐 가고 싶은 길이 있어
너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뿐야 넘어지진 않을거야
나는 문제 없어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거야
나는 문제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