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엄마, 이거 무슨 노래야? 이 노래 슬퍼.”
설거지를 하는 내 옆으로 다가온 네 살 딸아이가 부엌에 흐르고 있는 노래를 듣더니 말했다.
“그래? 이 노래가 슬프게 들려? 엄마는 슬프지 않고 좋기만 한데?”
나는 딸의 질문에 반문하듯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니야. 이거 말고 뽀로로 해적 노래 틀어줘. 이 노래 싫어. 엄마 노래는 이상해.”
딸은 충전기에 꽂아 놓은 나의 휴대폰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나경아, 설거지할 때만이라도 엄마가 듣고 싶은 노래 들으면 안 될까? 아까 차에서도, 밥 먹을 때도, 그림 그릴 때도 시우랑 나경이 듣고 싶은 노래만 들었잖아. 엄마도 하루에 한 번은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
나는 고무장갑을 벗지 않고 어린 딸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완곡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나도 처음부터 들어 볼래.”
딸의 말에 나는 냉큼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에게로 다가가 휴대폰을 뺏어 들어 흘러나오던 곡을 처음으로 되돌려 재생시켰다. 딸아이는 단 오 초를 듣더니 재미없다는 양 놀이방으로 뛰어 가버렸다. 하릴없이 부엌에 홀로 남겨진 나는 음량을 더욱 높이고,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며 생각했다.
아이의 말처럼 내가 정말 슬픈 노래만 듣는 걸까?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곰곰이 떠올려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 오래된 발라드곡이거나 피아노 혹은 오르골, 첼로 연주곡뿐이었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수를 맞추어 걸그룹 춤을 연습했었고, 학교에서 배운 팝송을 겉멋 잔뜩 들은 발음으로 어설피 흥얼거리기도 했었고, 온 국민이 따라 부르는 유행가와 댄스곡에 몸을 싣고 앞뒤로 흔들기도 했었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으로 달려가 목이 쉴 때까지 노래 부르다가 노래방 주인장이 주는 오 분, 십 분 서비스에 즐거워하며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처럼 듣지 않는 그 노래들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과 나도 모두 잠들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문득 나의 아이들이 조금 더 컸을 때 즐겨 들을 수 있는 엄마의 애창곡 폴더를 선물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내가 사랑했던 노래 한 곡 한 곡에 그때의 내가 어떠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그 노래들이 나의 아이들이 성장하는 순간순간에 흘러나와 그 당시의 나와 조우하는 모습으로 번져 나갔다.
그래서 작성한 엄마의 주크박스 오십 곡. 음악에 대한 식견도 얕고 듣는 곡만 계속 듣고, 신곡에는 한없이 어둡고 냉담한 서른다섯 살의 막귀 엄마가 디제잉한 것이라 변변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한 마디로 밑천이 없음을 미리 고백한다. 하지만 내 생애 곳곳에 스며들었던 노래에 지금의 내 마음을 담아 네 살 딸아이에게 매일 작은 음악 엽서를 부치는 일. 이것이야말로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 움틀 거리는 아이를 위한 ‘삶의 배경음악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수신자를 아들과 딸 모두에게 하려고 했으나 과감하게 이번만큼은 딸에게 전부 마음을 보내기로 했다. 이 세상에 뽀로로 해적 노래가 으뜸인 줄 아는 나의 눈꽃 같은 딸에게 엄마가 사랑한 노래가 결코 구슬프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