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공포물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을 때
"너 아기야? 이런 거 무서워서 못 봐? 나는 이제 초등학생이라서 볼 수 있는데. “
아들이 자신의 의자 뒤에 몸을 숨긴 동생을 향해 우쭐거린다.
“응, 나 아기야. 무서워. 엄마, 오빠가 무서운 거 봐, 난 뽀로로 보고 싶은데, 힝.”
요즘 자신을 아기라고 지칭하는 걸 부쩍 싫어하는 딸아이가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얘기한다.
“시우가 요즘 괴담에 빠졌구나? 엄마도 어렸을 때 공포 이야기 좋아해서 책도 샀었는데 책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맞아! <공포특급>. 무슨 귀곡 산장 같은 곳에 번개가 치는데 하늘에서 두 눈이 나를 쳐다보는 표지였어. 어우, 책 표지만 봐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아들은 요즘 신비아파트와 무서운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한 아들은 태블릿만 켜면 얼토당토않은 영상과 아이가 시청하기에는 조금 잔인하다 싶은 영상을 클릭한 후 내게 옆에 앉아있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옆에 앉아 아이의 태블릿 속 영상을 들여다보니 귀밑까지 쫙 올라간 입과 탁구공 같은 눈에 긴 생머리의 모모 귀신이 이상한 신음을 낸다. 모모 귀신을 보자 초등학생 때 유행하였던 빨간 마스크 괴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신도시 고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우리 집은 단지 내 가장 높은 동의 20층이었다. 신도시 아파트는 마당을 거쳐 대문 옆에 따로 있던 변소와 밤이면 나무의 그림자가 너울거리던 창호지 문, 부엌 한편에서 나오는 수도꼭지와 큰 대야가 욕실이었던 나의 개천 앞 집과는 전혀 다른 ‘집’이었다. 두 집과의 극심한 편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방과 거실이 생긴 점이었다. 새하얀 책상과 폭신폭신한 침대가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꿈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거실의 존재는 안방과 오빠 방뿐이었던 이전 집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획기적인 공간의 출현이었다. 거실에는 커다란 텔레비전과 자줏빛 소파, 그리고 어느 나라의 풍경인지 모를 텔레비전보다 두 배 큰 풍경화가 텔레비전 뒤편 벽에 벽지처럼 십 년을 붙어 있었다. 그리고 멋스러운 전축이 거실 스위치 밑에 당당히 자리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퇴근하여 온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 우리는 우르르 식탁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겨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이 매주 빼먹지 않고 챙겨본 프로그램은 MBC <경찰청 사람들>과 KBS <긴급구조 119>였다. 하도 인상적이었던지라 나는 아직도 택시 타는 것을 꺼리고 맨홀 뚜껑을 무서워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게 흠이지만, 아빠는 그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나와 오빠에게 선과 악, 세상의 위험한 것들을 가르쳤다. 마치 오늘날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함께 영상을 시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함께 리액션을 취하며 더 흥미를 돋우듯 그때의 우리 가족은 함께 범죄현장과 구조현장을 보며 스릴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 이외에도 주말에는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이 오빠와 나를 텔레비전 앞에 불러 앉혔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이경규는 몰래카메라로 이른 새벽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교통신호를 준수하는 이에게 양심냉장고를 선물하였고,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버스안내양이 된 이영자는 매주 토요일 스타들과 ‘오라이~’를 외치며 웃음을 실어 날랐다. 오빠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게 당연했던 그때를 추억하자 짐짓 각자의 태블릿이 있음에도 굳이 엄마에게, 오빠에게 같이 보자고 권하는 시우와 나경의 마음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같은 것을 보고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소통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이란 것을 아이의 행동에서 새삼 깨닫는다.
반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넘어 꼭 함께 보아야 하고, 둘 이상이 있어야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건 매년 여름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KBS <전설의 고향>였다. 금요일이면 나는 아버지가 읽는 신문에서 주말 TV 편성표를 쓱 빼어내 주말에 봐야 할 것들을 체크하였다. 여름이 되면 토요일 밤 아홉 시 네모 칸에 어김없이 <전설의 고향>이 새겨졌다. 그 다섯 글자가 신문에 등장할 때면 거실에 깔렸던 초록과 빨강으로 어우러진 두꺼운 카펫은 돌돌 말려 장롱 위에 올라갔고, 그 자리에 대나무 카펫과 죽부인이 놓였다. 토요일 밤, 색 바랜 산수화 배경화면에 읽을 줄 아는 글자가 ‘의’ 밖에 없던 ‘傳說의 故鄕(전설의 고향)’ 붓글씨 글귀가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면 나는 아빠와 오빠, 엄마를 거실로 불러 모았다. 그때의 나는 무서운 것을 좋아하나 혼자 볼 담력은 아직 부족한 열한 살 소녀였다. 우리 가족은 수박을 먹고, 화장실을 모두 다녀온 후 거실에 모여 앉아 그것을 봤다.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내놔!”
낫으로 시체의 다리 한쪽을 자르는 순간 시체가 벌떡 일어나 외친다.
“엄마야! 오빠 무서워. 어떡해, 잡히면 어떡하지?”
나는 벌떡 일어난 시체가 한쪽 발로 껑충껑충 뛰며 여인을 쫓는 모습을 오빠 등 뒤에 숨어서 몰래몰래 엿보았다. 그때 오빠의 등만큼 안전했던 곳이 또 있었나 싶다. 중학생이었던 오빠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으로 눈 한쪽도 가리지 않고 귀신과 구미호를 보았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박달산 골 깊은 곳에 있었다는 덕대골에 얽힌 전설이었습니다.”
‘끝’이라는 글자와 예의 익숙한 성우 아저씨의 목소리로 전설은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도 자리에 누우면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영상이 끝없이 내 머릿속에서 상영되었다. 결국 홀로 방에 들어가서 자기가 무서워진 나는 엄마와 아빠, 오빠에게 다 같이 거실에서 잠자길 졸랐다. 그리하여 무더웠던 여름날이면 거실의 베란다 창문을 열고 온 가족이 거실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잤었다. 그럴 때면 난 늘 아빠와 오빠 사이에서 잠을 잤고, 고층이었던 우리 집은 어딘가에 걸릴 것 하나 없는 여름밤 공기가 큰 창을 통해 슬슬 들어와 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그럴 때면 구미호의 꼬리가 내 발치에서 살랑거리는 것 같아 나는 더위도 잊고 얇은 모시 이불에 발을 빠짐없이 꽁꽁 싸매고서야 잠이 들었다. 키가 한 뼘 두 뼘 자라 모시 이불에 발을 다 넣을 수 없을 때까지도 전설의 고향은 매년 우리 집 거실에 오싹한 여름을 몰고 왔다.
***
나경아, 너는 엄마를 닮아서 호러물을 좋아할까 아니면 아빠를 닮아 싫어할까? 있지, 엄마랑 아빠가 연애할 적에 말이야. 대학로에서 공포연극을 본 적이 있어. 공연 시간도 밤 아홉 시였나 늦은 밤에 시작하고 성인만 입장 가능했어. 그야말로 한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공포 연극이었지. 엄마는 앞에서 세 번째 통로 구역으로 자리를 잡았어. 실제로 귀신 분장을 한 배우들이 객석을 떠돌아다닌다기에 통로 구역이 제일 무섭다는 후기를 봤거든. 근데 막상 내가 통로에 앉기는 무서워서 네 아빠를 통로에 앉혔어. 엄마는 호러물을 좋아하지만 겁이 나는 편이었고, 아빠는 공포물을 싫어하나 참을 수 있는 편이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대학로 극장가 일위답게 정말 무서웠어. 특히 암전 된 상태에서 죽은 아이 귀신이 네 아빠 오른팔과 허벅지를 턱 잡으면서 조명이 켜졌을 때의 네 아빠 표정을 잊을 수 없어. 두 번 다신 이런 연극 예매하지 말라며 집으로 오는 길 내내 투덜거렸지만, 엄마는 마음이 든든했어. 네 아빠는 영화관이나 극장에서 항상 조는 사람인데 그 연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꼭 잡고 뜬 눈으로 함께한 유일한 연극이라 가장 기억에 남네.
지금도 여름이면 공포영화가 나오는 건 극장가와 영화계 불변의 진리 같아. 엄마는 우리 넷이 다 함께 오싹한 공포영화를 여름밤 거실에서 보는 날을 그려본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초특급 공포영화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십오 년 후겠지. 그때면 엄마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있을 테니 귀신이 무섭지 않은 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네게 엽서를 띄우는 지금도 아직 여름이 가지 않았어.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네 아빠와 공포영화 한 편 보고 싶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잡은 손 놓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하게 무서운 걸로 말이지. 여름이 왔구나, 하며 영화관에 호러영화 포스터가 걸리면 이 노래를 들어봐. 여름이면 가요계의 여름 노래 각축전을 벌이던 시절에는 짜 맞추기라도 한 듯 전주에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깔렸어. 그 많고 많은 여름 노래 중 열한 살의 엄마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았어.
***
Track 02.
유피(UP) [바다] 작사·작곡 장용진
나의 볼에 입을 맞춰
날 사랑한다 말하는
널보면 마음이 더불안해
가지더라도 절때 너만은 내꺼란걸
그렇게 말하고 다닐꺼야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커저만 가는거야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멀게만 느낀걸까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커저만 가는거야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멀게만 느낀걸까
울고 싶었어 내앞에 널 봤을때
너무도 커저버린 너였기에 나는
초라해 졌던거야
내손을 잡아주기를 바래
난 나를 보낼께 내게~
나의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서 그렇게 잠들면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 널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커저만 가는거야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멀게만 느낀걸까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커저만 가는거야
왜 넌 내게만 만만 자꾸자꾸 멀게만 느낀걸까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야이야야야
나의 볼에 입을 맞춰
날 사랑한다 말하는
널보면 마음이 더불안해
가지더라도 절때 너만은 내꺼란걸
그렇게 말하고 다닐꺼야
난난난난 울고 싶었어 내앞에 널 봤을때
너무도 커저버린 너였기에 나는
초라해 졌던거야
내손을 잡아주기를 바래
난 나를 보낼께 내게~
나의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 그렇게 잠들면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 널
나의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 그렇게 잠들면돼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 널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난 너를 사랑해
언제나 나의 곁에 있는 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