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5. 한스밴드 [선생님 사랑해요]

네가 초경을 시작하였을 때

by 밍구


만약 무인도에 간다면 나는 굳이 바위에 작대기를 긋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리 주기가 달력 역할을 해줄 것이다. 생리를 할 때만큼은 화장실이 나만의 공간이고 싶은데 엄마 속도 모르고 네 살 배기 딸은 기어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화장실로 들어오고 마는 것이다.

“엄마, 기저귀 해? 나는 이제 기저귀 뗐는데. 이거 봐라, 키티 팬티 입었지?”

딸아이는 굳이 내 앞에서 바지를 벗어 내리고 뒤를 돌아 자신의 키티 팬티를 자랑한다.

“그렇네. 부럽다, 나경이. 이제 언니 다 됐네?”

“응, 근데 엄마 어디 아파? 쉬야가 빨개. 피 나. 무서워.”

딸은 재빨리 변기 버튼을 누르려는 나보다 한 박자 빠르게 행동하여 변기를 들여다보더니 호들갑을 떤다.

“아니야, 엄마 아픈 거 아니야. 나경이도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다시 한 달에 한 번 기저귀를 차야하는 날이 올 거야.”

나는 얼른 자리를 수습하고 나가고만 싶다.

“아니야. 나경이 이제 언니라서 기저귀 다신 안 할 거야. 나 아기 아니야.”

나보다 더 새초롬하게 화장실을 나가는 아이의 팬티 입은 엉덩이를 바라보다가 나는 나경이 벗어둔 바지를 들고 화장실을 나왔다.


아직 두발 자율화가 되지 않았던 때라 중학교 입학을 위해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교복도 맞춰 놓고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다. 방학 중에 생일을 맞이한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친구 몇몇과 함께 생일 선물을 사들고 친구의 집으로 향했던 날이었다. 생일 파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랑이 사이에서 뭔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져 화장실로 직행했다. 변기에 앉아 팬티를 내려 보니 갈색 생리혈이 묻어 있었다. 초경의 시작이었다. 구성애의 ‘아우성’ 성교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무렵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여학생에 걸맞은 성교육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갈색 혈의 난 데 없는 출현에 깜짝 놀란 나는 팬티를 다시 추켜올리고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의 난 그것이 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친구의 집에서 먹은 초코 케이크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도무지 초콜릿 케이크가 팬티에 묻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던 나는 급기야 팬티를 아예 벗어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건 케이크가 아니잖아?’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초콜릿 케이크도, 똥도 아닌 피가 팬티에 묻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병에 걸린 건가 싶었다. 생일파티의 즐거움은 모두 지워졌고, 팬티에 묻은 피가 주는 공포와 엄마에게 혼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고민 끝에 나는 피 묻은 팬티를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상가 쓰레기통에 몰래 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한번 아랫도리의 묵직함을 느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바로 화장실을 가서 확인하였더니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더는 나 혼자 감당할 사안이 아니었다. 나는 울먹거리며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 내 팬티에 자꾸 피가 묻어. 나 죽을병에 걸렸나 봐!”

“그래? 우리 딸이 이제 생리를 하는 모양이다. 엄마가 생리대 사용법을 잘 알려줄게. 봐봐.”

엄마는 피 묻은 내 팬티를 보더니 당신의 속옷 서랍장을 열어 생리대를 하나 꺼냈다. 엄마는 정사각형 모양의 하얀색 비닐을 뜯어 기다란 타원형 모양의 생리대를 펼쳐 내 팬티에 붙여 주었다.

“그리고 사용 후에는 요렇게 팬티에서 생리대를 떼어 돌돌 말아서 다시 비닐에 넣어 분홍색 스티커로 꼭 붙여서 휴지통에 버려야 해. 다 쓴 생리대를 아무렇게나 펼쳐 버리는 것은 네 팬티를 남들에게 아무렇게나 남에게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야, 알았지?”

엄마는 쓰지 않은 생리대를 돌돌 말아 버리는 모양까지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가 퇴근길에 케이크를 하나 사 왔다. 낮에 생일 파티에서 먹은 새까만 초콜릿 케이크와는 달리 눈처럼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였다.

“우리 딸 축하해!”

아빠는 무엇을 축하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아빠, 갑자기 웬 케이크예요? 동생 생일은 유월이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오빠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새하얀 케이크의 연유를 물었다. 그날 오빠만 모른 채 우리 셋은 알고 있었다. 내가 여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

나경아, 아마 그 무렵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생리를 시작할 때쯤 전도연과 이병헌 주연의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봤어. 영화 속 여자 주인공 홍연은 늦깎이 학생이었고, 수하는 시골학교에 부임한 순수한 총각 선생님이었지. 엄마는 그 영화를 보며 총각 선생님에 대한 로망을 가졌어. 초등학교 때는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남자 선생님을 중학교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었지. 이왕이면 국어 선생님, 혹은 체육선생님이어도 멋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야. 그리고 초경을 하며 나도 이제 여자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하였고, 내 방 옷장에 걸어둔 교복을 매일 걸쳐보며 새로운 학교에서 펼쳐질 중학교 생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

지금은 엄마 때보다 아이들의 영양 상태와 발육이 좋아져 사춘기도 빨리 오고, 그만큼 초경 시기도 일러졌다고 해. 엄마가 열세 살 무렵 했으니 나경이 너도 그즈음, 혹은 조금 더 일찍 초경을 겪겠지. 아직 엄마가 아이에게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너와 네 오빠가 초경과 몽정을 겪기 전에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너는 둘째이다 보니 오빠가 모든 게 엄마의 처음이어서, 많은 것을 새롭지 않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너는 나에게 첫딸이기에 네가 여자로서 겪는 것들은 너에게도, 딸을 둔 엄마로서 내게도 처음이야. 그래서 네가 나처럼 초경을 하여 놀란 표정으로 내게 그 소식을 알린다면 나와 네 아빠도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너를 꼭 안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거야. 그날 밤 나는 아마 이 노래를 듣지 않을까 해. 우리 같이 들을까.


***

Track 05.

한스밴드 [선생님 사랑해요] 작사 이도연 작곡 최준영


어느 날 문득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랑이 온거야

늘 웃음 가득한 멋진 그대의 모습

내 맘 속에 가득 차고 난 거울 앞에서

매일 단장을 하며 함께 할 수 있길 기도해

그대의 집 앞에 수줍게 쓴 내 편지와

장미꽃 한송이를 몰래두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스런 사랑

나의 첫사랑 너무 소중해

그 사람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바라는 건 단 한번이라도

나 그분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

어느 날 하얗게 나의 꿈은 사라졌어

겨울이 오면 결혼하신다고 웃으며 축하를 해야하지만

나 어떡해 자꾸 눈물이 나

나의 첫사랑 너무 소중해

그 사람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바라는건 단 한번이라도

나 그분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

나의 첫사랑 너무 소중해

그 사람 나를 어떻게 보실까

내가 바라는건 단 한번 이라도

나 그분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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