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네가 왼손으로 밥을 먹으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쓸 때
아무리 봐도 없다. 키티 어린이 젓가락은 오른손잡이용뿐이었다. 결국 유일한 왼손잡이용 뽀로로 젓가락과 오른손잡이용 키티 젓가락을 러시아에 사 왔다.
“키티 젓가락은 소시지, 뽀로로 젓가락은 계란 프라이. 나 잘하지?”
양 젓가락 끝에 걸린 소시지와 계란 프라이를 입에 쏙쏙 넣으며 나경이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계란 프라이는 한 번에 잘 짚지만, 소시지는 여러 번 떨어트려 결국 손으로 줍는 게 다반사다. 그래도 늘 식탁에 앉으면 젓가락 두 개를 양손에 스스로 꿰차며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써보는 딸아이가 내 눈에는 대견할 따름이다.
전철을 타고 유치원에 다녔던 내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개찰구를 지나는 것이었다. 전동차에 탈 때 승강장과의 사이에 발이 빠질 것 같거나 역사 안의 촘촘했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보다 개찰구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왼손잡이였던 내게는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승차표를 왼편 개찰구에 넣어 한 번의 버벅거림을 겪고 올바른 개찰구를 지나려다 보면 이미 시간을 초과하여 요란스러운 삐 소리와 함께 둥그런 스테인리스 바에 걸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왼손과 오른손의 혼란을 제대로 맛본 건 피아노 학원에서 <고양이 춤>을 배울 때였다. 피아노 학원에서 오른손으로 처음 건반을 두드렸고, 왼손이 오른손과 같은 음을 연주한 후에는 왼손은 주로 반주를 오른손은 멜로디를 쳤다. 피아노 소곡집에서 고양이 춤을 배우기 전까지 왼손과 오른손이라는 명칭은 크게 필요 없었다. 고양이 춤은 왼손이 오른손과 교차하며 높은음과 낮은음을 고양이가 건반 위를 넘나들듯 치는 흥미로운 곡이었다. 그러나 그 흥미를 느끼는 건 왼손과 오른손 악보를 잘 볼 줄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왼손 악보에서 높은 음자리와 낮은 음자리가 그려질 때마다 왼손은 자유자재로 오른손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건반을 두드려야 했다.
“왼손이 오른손 위로 와야지.”
30cm 플라스틱 자를 든 피아노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오른손이 여기 아니에요?”
왼손을 피아노 위에서 조금 올리며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오른손은 이쪽이지.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잖아. 아직도 왼손 오른손을 헷갈리면 어떡하니.”
선생님은 자로 나의 오른손 등을 톡톡 두드리며 나무라듯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이 손으로 밥을 먹어요. 오른손? 이 손으로는 딱 글씨만 써요.”
나는 억울했고, 이날 비로소 왼손과 오른손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오른손잡이가 대다수였고, 왼손잡이는 대부분 교정을 통하여 양손잡이가 되거나 아예 밥도, 글씨도 모두 오른손을 쓰는 오른손잡이로 바뀌었다. 양손잡이가 된 나는 중학교에서 밥도, 글씨도, 발야구도, 농구도, 꼬집기도 모두 왼손과 왼발을 쓰는 친구 연주를 만났다.
나의 오른손에 펜을 쥐여준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학교에 가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오른손잡이 친구들과 팔이 부딪혀 모두 나와 짝꿍을 하기 싫어할 거라며 짝꿍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래도 차마 밥 먹는 숟가락만큼은 빼앗거나 손등을 때릴 수 없어 내버려 뒀다고 한다. 나는 연주가 왼손으로 글씨 쓰는 모습을 신기하지 않은 표정으로 보려 했다. 내가 아니어도 많은 친구가 90도 돌린 공책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쓰는 연주의 필기하는 모습을 무척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책상은 할머니의 말과 달리 짝꿍 없이 혼자 앉는 일인용 책상이었다. 나는 연주가 초등학교 육 년을 왼손잡이로서 짝꿍과 사이좋게 지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그 대신 점심시간에 책상을 붙여 왼손으로 밥을 먹는 우리는 사이좋은 도시락 짝꿍이 되었다. 왼손잡이와 양손잡이의 세계에서 왼손으로 밥을 먹고, 십자수하고, 칼질을 하는 것은 전혀 불편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으니까.
***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외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조광』12호, 1936.10
나경아, 엄마가 여중생 시절 이 작품을 읽으며 훗날 나의 아이도 허생원과 동이처럼 나를 닮아 왼손잡이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어. 네 오빠가 이유식 숟가락과 색연필을 오른손에 쥐는 것을 보며 안도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지. 그런데 나경이 넌 엄마를 닮아 왼손잡이더구나. 이제 막 가위질을 배우기 시작한 너는 역시나 숟가락과 색연필을 잡았던 왼손으로 싹둑싹둑 색종이를 오리더구나. 그런 너를 보며 엄마의 마음은 갈팡질팡하고 있어. 나처럼 글씨만이라도 오른손으로 쓰는 양손잡이로 교정해야 할까 아니면 왼손잡이로 모든 것을 하게 내버려 둬야 할까. 솔직한 심정은 왼손잡이보다 양손잡이가 되길 엄마는 추천해. 양손을 사용하면 우뇌와 좌뇌가 고루 발달하여 좋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 때문만이 아니라 양손잡이로 살아보니 참 편하고 유용한 순간이 많았기에 인생 선배로 강권하는 바야. 그러나 고집 센 네 왼손에서 색연필을 뺏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더라. 나의 외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너만치 고집이 셌다던 나를 어떻게 양손잡이로 바꿀 수 있었는지 그 비법을 여쭙고 싶을 지경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엄마가 생각해낸 방법은 뺏기보다 오른손에도 색연필을 쥐어주는 것이었어. 애석하게도 그다지 신통치는 않은 방법인 것 같지만.
엄마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술을 왼손으로 따라 한 소리 들었던 첫 회식 생각이 나는구나. 그 이후로 윗사람과의 술자리에서 술병을 들 때면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뻗지만, 엄마는 그게 지금도 억울하고 썩 유쾌하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네가 성인이 되어 엄마와 술잔을 기울이는 나이가 되면 엄마에게는 늘 왼손으로 잔을 채워주길 바랄게. 엄마는 네가 왼손잡이여서 무척이나 기뻤단다. 네가 학교에 다니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게 결코 이상하거나 틀리지 않은 사회가 되어있길 바라며 이 노래를 크게 틀고, 치얼스!
***
Track 06.
패닉(PANIC) [왼손잡이] 작사·작곡 이적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 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 보고 한번쯤
그냥 모른척해 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 진다고
나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