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네가 흥얼거리는 팝송이 생겼을 때
“엄마, 영어 말고 한국말 바나나차차 틀어줘.”
“아니야, 나는 영어로 부르는 바나나차차가 좋아. 이거 들어.”
차에 타면 뒷좌석에서 벌어지는 실랑이다. 오디오 주도권을 장악했던 제 오빠에게 나경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두 아이의 신청곡은 대부분 겹치기 마련인데 요즘은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으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땅덩어리가 큰 러시아에서는 이동시간 30분이 기본이기에 차에 타면 음악 감상 시간이 제법 길게 주어진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휴대폰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차곡차곡 넣어 주행 시 무한 반복한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어 남편이 오디오를 꺼버리기 전까지 시우는 영어로, 나경은 한국어로 소리 높여 바나나차차를 부른다. 나는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함께 목청껏 노래 부르는 오누이의 모습이 귀여워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른다.
중학생이 되니 다양한 교과목 선생을 하루에 대여섯 만나게 되었다. 기술 선생은 큰 키에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체구가 마치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 같았고, 가정 선생은 방앗간 주인아주머니를 연상시켰으며, 체육 선생은 범죄물에서 보았던 형사처럼 우직한 인상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푸른 눈이 아닌, 푸른 눈두덩이의 영어 선생이었다. 그녀는 늘 녹색 혹은 청색, 그도 아니면 보랏빛 아이섀도를 하는 과감한 여자였다. 또한, 그녀는 굽실굽실한 머리에 모자 모양 핀이나 커다란 리본 등을 스스럼없이 꽂았다. 옷차림도 바비인형의 피크닉 옷차림처럼 굉장히 화사한 옷은 예사였고, 판서라도 할라치면 민낯의 겨드랑이가 만개하는 민소매나 날개형 소매, 망사옷도 거침없이 입는 패셔니스타였다. 외국물을 먹어서 자유분방한 것이냐는 의문은 그녀의 토속적인 발음이 유학파가 아님을 대변해줬다. 나는 그녀를 비록 해외파는 아닐지라도 영어와 영문을 공부하였기에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영혼과 의식 양식을 체득한 사람이라 정의하였다.
영어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엄마는 매일 아침 7시 40분에 수화기에 대고 헬로우를 말하는 윤 선생을 내게 시켰지만, 윤 선생은 영어의 즐거움을 전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푸른 눈두덩이의 선생은 달랐다. 먼저 그녀의 행색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단 하루도 같은 옷을 입지 않는 그녀의 패션을 보는 재미가 영어 시간을 기다려지게 하였다. 그리고 몹쓸 발음으로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의 존재가 영어의 장벽이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은 그녀가 라디오 카세트를 들고 다니며 들려주는 팝송이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날 무렵 꼭 팝송 한 곡을 틀어줬다. 다양한 팝송을 틀어준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매번 같은 곡을 듣다 보니 가사의 단어가 무엇인지, 무슨 뜻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조금씩 흥얼거리게 되었다.
“여러분 오늘은 교과서로 영어공부를 안 할 거예요. 먼저 유인물을 받으세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교탁에 빨간색 영어 교과서 대신 항상 들고 다니던 은빛 카세트를 올려놓았다. 앞자리의 친구가 어깨너머로 건넨 갱지에는 영어과 한글, 괄호 기호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유인물인 각 분단 끝자리 학생의 책상까지 모두 전달되자 그녀는 익숙한 팝송을 틀었다.
“오늘은 이 노래로 수업할 거예요. 첫 줄의 ‘An empty’를 보면 an이죠? 뒤에 오는 단어가 모음으로 시작할 때는 a가 아니고 an을 써요. 그리고 empty는 ‘텅 빈’이란 뜻이에요. 괄호 안에 ‘텅 빈’이라고 적으세요. 여기서 p는 묵음이라 엠프티가 아니라 엠티라고 발음해요. 자, 다시 들어봐요. 언 엠티 스트륏.”
그녀의 팝송 수업은 획기적이었고,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낭만의 끝은 다소 배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이 팝송을 외워서 부르는 것이 2학기 영어 수행평가라는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녀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은, 아니 적어도 그녀가 영어를 가르치는 반 학생들은 이 팝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키순으로 하면 가장 끝 번호였지만, 이름순으로 하면 가씨를 만나지 않는 이상 일 번이었던 나는 여학생으로는 가장 먼저 이 노래를 교탁 앞에서 불러야 했다. 이 팝송은 수행평가가 끝났어도, 그녀의 카세트가 아니어도,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꼭 한 번씩 불렀고,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도 심심히 않게 들렸다. 다소 계획적이었으나 낭만적인 그녀 덕분에 나는 팝송에 흥미를 느꼈고, 심지어 고등학교에서 GMP(Good Morning Pops의 약자)라는 팝송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empty'라는 단어를 읽을 때면 그녀의 딱딱하고 정직한 발음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언 엠티 스트륏‘을 흥얼거리게 된다.
나경아, 러시아에서 유년을 보내고, 학창 시절을 맞이할 네게 오늘은 어떤 말을 써야 할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엄마는 모국어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 그러나 너와 네 오빠는 러시아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방인이자 외국인의 삶이 이미 시작되었지. 집 밖을 벗어나면 한국어는 들리지 않고, 학교에 들어가면 영어가 들리고, 거리를 걸으면 러시아어가 들리는 현실에서 네게 팝송을 논하기란 쉽지 않구나. 지금도 ‘엄마 손가락, 엄마 손가락 어디 있나요?’를 ‘mommy finger mommy finger where are you?'라고도 곧잘 바꿔 부르는 너를 보면 너와 나의 세대가 또 한 번 다르고, 너와 나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해. 구제불능의 영어와 음악에 대한 좁은 식견을 가진 엄마이지만, 한국 노래와 팝송, 러시아 노래가 갖는 고유의 느낌과 가사가 담아내는 정서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껴. 너는 엄마보다 더 빨리 다양한 언어의 노래를 접하고 이해하고 부를 수 있겠지.
이제 막 좋아하는 동요를 수화기 너머로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뽐내기 시작한 네가 엄마에게 팝송을 불러주는 날이 올까. 엄마를 위해 ‘이 노래는 말이야, 무슨 내용이냐면’하며 곡 설명도 야무지게 해 주며 말이야. 그 노래가 무엇이 될지 무척 궁금하구나. 네가 타국의 노래에 네 마음에 처음 담아 부르는 날, 엄마는 이 노래를 들려줄게, 아니 불러줄까.
***
Track 07.
Westlife [My Love]
An empty street, an empty house,
a hole inside my heart
I`m all alone
The rooms are getting smaller
I wonder how, I wonder why,
I wonder where they are
the days we had, the songs we sang together
And oh my love
I`m holding on forever
Reaching for a love that seems so far
So I say a little prayer
And hope my dreams will take me there
Where the skies are blue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
Over seas from coast to coast
To find the place I loved the most
Where the fields are green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
I try to read, I go to work
I`m laughing with my friends
But I can`t stop to keep myself from thinking oh no
I wonder how, I wonder why,
I wonder where they are
the days we had, the songs we sang together
And oh my love
I`m holding on forever
Reaching for a love that seems so far
So I say a little prayer
And hope my dreams will take me there
Where the skies are blue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
Over seas from coast to coast
To find the place I loved the most
Where the fields are green
To see you once again
To hold you in my arms
To promise you my love
To tell you from a far
what I`m thinking of
Reaching for a love that seems so far
So I say a little prayer
And hope my dreams will take me there
Where the skies are blue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
Over seas from coast to coast
To find the place I loved the most
Where the fields are green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 say a little prayer
dreams will take me there
Where the skies are blue
to see you once again
Overseas from coast to coast
To find the place I love the most
Where the fields are green
to see you once again
M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