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45. 신성우 [서시]

45. 육아에 매몰되어 너를 잃어갈 때

by 밍구


“엄마, 내 꽃 이불 어딨어?”
딸아이가 이가 날 때부터 질겅질겅 씹어 참혹해진 자신의 애착 이불을 찾는다.
“글쎄다. 안방에 없어? 꽃 이불은 네가 잘 알지. 그건 왜?”
나는 인형을 잔뜩 들어 얼굴이 파묻힌 딸을 보며 되묻는다.
“내가 어부해주려고. 멍멍이 졸립대. 자장자장 하면 잘 거야.”
시우와 달리 포대기를 둘러 재워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나경이었다.
“나경아, 엄마가 분홍 포대기 둘러서 어부바해줄까? 멍멍이는 내려 놓고.”
나는 옷장 가장 높은 곳에 고이 개켜둔 분홍 포대기를 몇 년 만에 꺼내 보았다.
“오예!”
분홍 포대기가 육 년 만에 비로소 임자를 만나 쓰임을 제대로 한다.


내 등에 업힌 시우와 깜깜한 하늘을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하루의 마침표였던 날들이 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이면 아들은 아빠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벽 한 시까지 버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시우를 재우고 술 한잔 맛있게 마시려던 날의 야망은 와르르 무너졌고, 오붓하게 영화 한 편 보려던 날의 야무진 꿈도 산산이 조각났다. 급기야 신랑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도 모두를 위해 야근을 자청하기에 이르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내게 번뜩 떠오른 그것!
"시우야, 어부바하자. 우리 어야 가자!"
바로 분홍색 포대기였다.
시우는 첫째임에도 마치 위에 누나가 있는 둘째처럼 분홍이나 보라, 노랑의 아이템이 적지 않다. 딸을 갖고 싶은 나의 깊은 욕망이 육아용품을 살 때마다 불쑥 튀어나오곤 만 것이다. 그러나 이 분홍색 포대기는 놀랍게도 내가 산 것이 아니었다.


"얘, 왜 너는 포대기를 안사냐? 맘 같아선 내가 내 마음에 드는 거로 후딱 사서 시우 둘러업고 나다니고 싶은데 포대기는 원래 친정엄마가 사주는 거라서 내가 안 사는 거야."
시우를 낳고 삼칠일을 친정에서 보낸 후 처음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기띠를 많이 쓰고, 포대기는 구시대의 유물로나 생각했기에 나 또한 엄마와 출산 용품을 준비할 때 값비싼 아기띠만 사놓은 터였다.
'누가 사든 간에 아쉬운 사람이 필요하면 사는 거지 왜 항상 어머니는 저런 명분을 내세우시는 걸까?'
나는 포대기는 친정엄마가 사야 하는 거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내심 기분이 언짢았다. 결국, 나는 그 말에 더욱 오기가 생겨 엄마에게 포대기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살 생각도 안 했다.

한 달의 시간이 더 지나고 팔십일 된 시우를 안고 러시아로 돌아가기 이틀 전,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대학 친구에게 연락이 와 당장 그날 늦은 밤 우리 동네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엄마 된 거 축하해. 선물은 너무 늦은 건 아닌지 이미 있는 건 아닌지 좀 걱정되지만 묻지 않고 샀어, 내 마음에 드는 거로."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대학친구 쿡이가 커다란 쇼핑백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뭐야? 상자가 엄청 큰걸? 고마워. 그렇게 말하니 궁금한걸."
친구에게서 받아든 커다란 하얀 상자를 열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벌써 산 건 아니지?"
"아니, 아직 안 샀어. 근데 어떻게 포대기 사줄 생각을 다 했어? 그것도 분홍색으로 말이야!"
상자 속에 가지런히 개켜 있는 분홍색 포대기를 꺼내 펼쳐 보며 말했다.
"다행이다. 외국 사람들 눈에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모습이 굉장히 색다를 거 같아서. 러시아에서 혼자 아이 키우는 네게 필요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니 이게 떠오르더라고. 포대기 두른 네 모습도 궁금하고. 둘째는 꼭 딸 낳으라고 분홍색으로 샀어."
쿡이의 깊은 마음 씀씀이에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나를 자신의 도플갱어라고 표현하는 녀석이 나를 너무나 잘 아는 데에서 오는 친밀감에, 그리고 이제 정말 어린 것을 안고 아무도 없는 러시아로 간다는 사실에서 오는 두려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보다 낫네. 포대기는 내가 진작 사줬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우리 딸이 인생을 아주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고 부럽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분홍 포대기를 뽐내며 친구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엄마가 말했다.
"포대기는 친정엄마가 사주는 거야 원래?"
"응. 포대기는 그렇지. 성국이가 널 정말 많이 아끼나 보다, 친정 오빠처럼. 그리고 어떻게 남자애가 둘째는 딸 낳으라고 분홍색으로 다 사 올 생각마저 했다니? 나중에 성국이 보고 꼭 들어와서 밥 한 끼 먹고 가라고 해라. 성국이 선물에 내가 다 눈물이 나네."
엄마는 포대기를 펼쳐 시우를 업었다 샘 치고 당신의 몸에 둘러보았다.
"내일 시우 깨면 포대기로 한 번 업어봐야겠다. 성국이한테 엄마가 고맙다고 꼭 전해줘. 내가 사줘야 할 걸 이렇게 내 마음에 꼭 들게 사줬으니!"
엄마는 분홍포대기 선물에 나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내심 언짢았던 시어머니의 말씀이 그제야 마음에서 녹아내렸다. 친정엄마와 포대기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성국이를 친정 오빠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포대기는 친정엄마가 엄마가 된 딸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인 모양이다. 아마도 포대기로 아이를 업었을 때 등짝으로 전해오는 아기의 따뜻한 온기가 친정엄마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가슴 뻐근한 그리움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출국 바로 전 친구에게 받은 깜짝 선물을 이민 가방에 챙겨서 왔더랬다.


“남편에게는 비밀이야. 그래도 갈래?”
이 년 만에 다시 만난 쿡이는 더욱 늠름해져서 늦은 밤 또 다시 우리 집 앞으로 왔다.
“부모님께 간신히 허락받았어. 너니깐 엄마도 허락해주신 거야. 어서 가자. 진짜 신난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쿡이의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혜화동으로 향했다.
곤히 잠든 교정을 십여 년만에 친구와 함께 걸었다. 쿡이는 새내기 시절 대학 첫 수업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다. 사회과학부였던 쿡이와 나는 전공수업은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것만 제외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정해진 요일에는 함께 쪽문으로 내려가 닭도리탕을 즐겨 먹었고, 특별한 전시회나 영화제가 있으면 나는 곧잘 그를 끌고 함께 했다. 무엇보다 함께 많이 걸었다. 혜화에서 걷다 보면 종로였고, 청계천을 따라 가다 보면 을지로였다. 쿡이는 벤치가 보이면 늘 나를 두고 담배를 태웠다. 절대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법이 없던 쿡이를 떠올리면 담배를 태우던 옆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그려진다. 쿡이는 똑똑하고 심지가 굳었으나 자신을 쉽게 믿어주지 않아 오랜 시간을 방황한 후에 자신의 꿈을 찾아 천천히 흔들림 없이 걷기 시작하였다. 그맘때 나는 결혼하였고, 그때 도약을 위한 단련의 시간을 보내던 터라 쿡이는 가난했다. 쿡이와 결혼 전 마지막으로 함께 서울을 산책할 때 그는 내게 아주 수줍게 결혼선물을 건넸다. 나와 어울릴 것 같아 길을 걷다 샀다는 코사지와 넉 장의 손 편지, 그리고 축의금 삼만 원이 들어 있었다.


“와, 나 이 시간에 학교 처음 와 봐. 너무 신기하다. 너는 이 시간에 학교에 자주 있었지?”
자정 무렵의 캠퍼스는 참을 수 없이 고요했고 듬성듬성 반짝였다. 차가운 가을바람에 앞섶을 여미며 내가 말했다.
“강민아 애 낳더니 다 죽었네. 너가 이 시간의 학교가 처음이라고? 우리 ‘북한경제의 이해’ 시험공부할 때 같이 중도에서 철야했던 날 기억 안 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배를 태우며 깜깜한 금잔디를 바라보던 쿡이가 내게 되물었다.
“아, 맞네! 나 그날이 대학 시절 통틀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밤새서 공부한 날이잖아. 새벽에 정문 앞 편의점에서 너랑 컵라면 먹고. 편의점 내려가는 길에 너 동아리 여자 후배인가 선배인가 마주쳐서 나랑 일행 아닌 척했잖아?”
나는 퍼뜩 그날의 일이 모두 떠올랐고, 뒤늦게 그를 질책했다.
“아줌마가 이상한 건 기억 잘하네. 동아리 얘기하니 생각난다. 너 무슨 서예 동아리 했었잖아. 동방 한 번 가볼래?”
쿡이는 다 태운 담배 꽁초를 버리고 네게 물었다.
오케스트라 동아리 방문은 도어락이 걸려 있어 도무지 들어갈 길이 없었다. 다행히 서도회는 재학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4자리로 이루어지는 비밀번호에 대한 힌트가 문에 적혀 있었다. 그때는 그게 졸업한 동인들을 위한 배려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말 힌트 덕분에 도장 문이 철컥 열리는 순간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린 후배들에게 무척 고마웠다. 아주 오랜만에 맡는 묵향이었다. 그리고 사방에 걸려있는 후배들의 글씨가 정겨웠다.
“오랜만에 글씨 한 번 써보지그래? 붓이며 벼루며 여기 다 있는 거 아냐? 기다려 줄게. 너 글씨 쓰는 것도 오랜만에 보고.”
왈칵 눈물이 나오려는 내게 쿡이가 말했다.
“그럴까?”
아주 오랜만에 붓을 들었다. 그 사이 쿡이는 맥주와 소주를 궤짝으로 사왔다. 다음 날 도장 문을 가장 먼저 열 이름 모를 술 좋아하는 후배의 얼굴이 나와 같을까.


“다행히 시우가 너 안 찾고 잘 자나 보다. 피곤할 텐데 한숨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

쿡이가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럴까? 차에 탁 타니까 졸리네. 유산되고 이렇게 쏘다녀 본 거 실은 처음이야. 네 덕분에 오늘 진짜 행복했어. 잊지 못할 거야. 거짓말 조금 보태면 러시아 돌아가서 앞으로 펼쳐질 내 삼십대의 힘든 날, 꺼내먹을 수 있는 든든한 에너지 식량을 마음에 가득 담은 기분이야. 어떻게 학교에 가자는 말을 할 생각을 했어?”
나는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후문이 잠겨 다시 정문으로 핸들을 꺾는 쿡이에게 말했다.
“다음에 한국 왔을 때도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 어디든 데려다 줄게. 강민아, 아프지 말고 잘 살아라. 엄마도 좋지만, 그냥 엉뚱했던 너도 좋아. 난 그 모습이 더 익숙하고.”
나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쿡이의 호박마차에 나는 유리구두를 고이 잘 벗어뒀다.


***

나경아, 돈이란 게 자본주의 시대에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때가 있어. 참 서글프게도 그건 한 치의 오차와 변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고약한 구석이 있어. 그게 자명해질 때가 관혼상례를 겪을 때야. 결혼을 빨리했던 엄마는 친구들이 먼저 측정한 봉투의 크기를 기억해두었다가 똑같은 크기로 돌려주는 얍실한 계산법을 사용했어. 그러나 쿡이. 쿡이의 결혼식에는 어떻게 내 마음을 표현해야 할까. 쿡이는 삼만 원이라는 돈에 대한 미안함 한 장, 젊은 날의 산책에 대한 고마움 한 장,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 같다는 이 노래 가사 두 장을 썼지.
딸아, 너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언제부터인지 모를 네가 없는 네 일상과 아이 때문에 네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는 서글픔이 널 덮치는 날이 올지 몰라. 분명 네가 선택한 일이고, 방긋 웃는 아이의 미소에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조차 죄책감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뒤돌아서면 뜻 모를 억울함과 무기력함, 혹은 분노가 차오르기도 하지. 엄마는 홀로 키웠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가 부모님이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자리하여 바쁜 네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네 오빠와 너를 키웠어. 아마 유산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저런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내 몸 구석구석에 그대로 저장된 채 둘째를 낳고 키웠겠지.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 내 몸과 마음의 적색경보에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화들짝 놀라고 말았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처참해졌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어.
결혼하고 딱 두 번을 본 쿡이는 아이러니하게 첫 출산 때는 엄마의 상징과도 같은 분홍 포대기를 선물해주더니 유산을 겪은 내게는 스무 살의 내가 잠든 곳을 보여주더구나. 새로 입은 옷이 잘 맞는다 하여 그 옷만 입으면 너무 빨리 헤져버리듯 나는 엄마의 삶에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었어. 그게 타의든 자의든 난 육아에 매몰되고 있었던 거야.
자리에 따라 옷을 바꿔 입듯 엄마의 네 모습도, 그냥 오나경의 네 모습도 모두 예쁘게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구나. 아이가 너만을 필요로 할 때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엄마는 누구보다도 잘 알아. 하지만 아주 가끔 일 년에 단 하루여도 좋아. 그날 네 앞에도 일탈을 도와주는 멋진 호박마차가 시동을 걸고 있다면 좋겠구나.



Track 45.

신성우 [서시] 작사·작곡 신성우, 이근상, 이근형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 속에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이제 여행을 떠나야하는
소중한 내 친구여

때론 다투기도 많이 했지
서로 알 수 없는 오해의 조각들로
하지만 멋적은 미소만으로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내가 항상 여기 서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니가 나를 볼 수 있게
저기 저별 위에 그릴 거야
내가 널 사랑하는 마음 볼 수 있게
예 에에 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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