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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ug 12. 2024

옥련씨는 올림픽이 싫다고 하셨어

부산이 이렇게 더웠던 적이 있었던가. 내가 늙은 건가. 땀 한 방울 나지 않고 뽀송했던 젊은 날이 갔다. 땀이 비 오듯 하다는 말을 체득한다. 오히려 완전 늙어버리면 더위를 체감하지 못할까. 옥련씨는 언제나 으슬으슬 춥다. 지금의 더위도 옥련씨는 견딜만하다. 오래된 골드스타 에어컨이 불이 날까 틀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러기엔 몇 년 전 바꾼 무풍에어컨도 누군가가 올 때만 튼다. 옥련씨는 39년간 여름에 선풍기를 팔았다. 한일펌프 대리점의 여름 효자템이었다.


8월 15일이면 이 더위가 싹 가신다. 옥련씨는 매해 말했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광복절이 되면 살만했다. 대한더위만세. 옥련씨가 내 아이를 위해서 수박과 복숭아를 보냈다 했다. 금정시장에서 직접 샀다고 엄마가 전했다. 이 더위에 무슨 일이냐고. 낮에 왜 나가시냐고 놀래서 전화했다. 감사함이 먼저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아직도 예쁜 말 인사보다 민망함의 볼멘소리가 먼저 나가는 손녀다. 앙꼬가 과일을 잘 먹잖아. 더울 때 제일 맛있어. 할머니 잘 먹일게.


통화를 하기 직전 안세영이 금메달을 땄다. 할머니. 금메달 딴 거 보셨어? 아이고. 말도 마라. 올림픽 때문에 뉴스도 안 해, 드라마도 안 해,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냐. 이번주에 끝나는데. 할머니 심심하시겄다. 그러게나 말이다. 금메달 따서 내주는 것도 아닌데, 뭣이 중하겄노. 옥련씨의 오락거리가 멈췄다. 저녁시간 KBS 6시내고향-막장드라마-홈드라마-뉴스로 이어지는 이 라인이 옥련씨의 유일한 유희인데. 이걸 어쩐다.


나도 올림픽은 별로다. 옥련씨 말대로 금메달 따서 나 주는 것도 아닌데. 애국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어서였을 수도 있다. 김연아 경기도 안 봤다. 이쯤 되면 나는 매국노인가. 아니면 옥련씨 성정을 닮아서인가. ㅋㅋ 그런데 양궁 경기를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 보았다. 반찬을 만들며 틀어놓은 티비에서였다. 나도 모르게 불끈 힘주게 되더라. '우리' 나라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더라. 이왕 하는 거 금메달 땄으면.


축제는 끝났다. 4년 뒤 뜨거운 LA에서의 올림픽을 나는 응원하게 될까. 옥련씨와 함께 볼 수 있을까. 괜스레 생각해 본다.


왕할무니 옥련띠 집에서 수박묵는 앙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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