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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Jul 01. 2024

92번째 생일

92번째 생일이라니. 그런 날이 오다니. 오히려 제일 몰랐던 사람은 옥련씨다. 올해로 92살이 된 옥련씨의 생일파티가 지난주에 열렸다. 찐 생일은 월요일이었기에, 그 파티는 주말로 당겨졌다. 옥련씨는 아이 다섯을 낳았다. 모두가 결혼했고 모두가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들이 또 아이를 낳았다. 한 일가를 이룬 그의 가족은 총 서른두 명이다. 그중 열일곱이 모였다. 미래의 내 92번째 생일에 모일 수 있는 가족은 몇이나 될까. 남편과 자식과 그의 배우자와 그의 자식. 혹은 자식들. 많아봐야 다섯이다. 그렇기에 열일곱이 모인 그의 생일은 가히 빅파티였다.


옥련씨의 남편 재봉씨가 살아있을 때는 무던히도 집에서 잔치가 많았다. 생일이라서, 여름이라서, 휴가라서 온 가족이 모였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먹고 놀았다. 사람이 많아서 음식도 그릇도 그득했다. 누가 다 치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하다. 아찔하고 아(?)지럽다. 요즘은 집에서 밥 해준다는 사람이 없다. 식세기가 있어도 시켜 먹는다. 물론 나부터다. 옥련씨의 생일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파티의 시작은 청사포가 보이는 식당이었다. 태국에 가본 적 없는 옥련씨는 팟타이와 뿌빳뽕커리를 생일에 먹게 됐다. 타이음식 자체를 처음 먹어본 80세 맏사위는 이게 뭐신고 했다. 옥련씨는 이미 딸과 손녀와 자주 먹어본 음식이다. 맏사위는 딸이 없다.


집에서 잔치가 열리면 응당 그 집이 숙소가 된다. 그래서 옥련씨네 집은 이불도 방도 많았다. 손님이 오기 전에 집을 쓸고 닦고 이불을 빨고 손님이 가고 나서 집을 쓸고 닦고 이불을 빨았다. 요즘은 집에서 자고 가라는 사람이 없다. 옥련씨의 생일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파티의 장소는 해운대의 대형 리조트로 선정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 리조트다. 누구도 고생하지 않고 쾌적하고 떠들썩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자식 다섯 중 돈에 아쉬운 자식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라 다행인 옥련이다. 물론 그 자식들이 돈에 아쉽지 않게 된 건 옥련씨의 노력 덕분이다.


옥련씨를 가운데 두고 열일곱이 빙 둘러앉았다. 두 돌이 지난, 이제 말을 곧잘 하는,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왕할머니~라고 해야 하는데. 본인 생일인 줄 알고 지 이름을 넣어 부른다. 모두가 깔깔댄다. 옥련씨의 지난 생일들을 곱씹어본다. 수곡의 작은 마을에서 초여름에 태어난 여자아이. 남자가 아니라 탄생 자체를 홀대받았을 여식. 열여덟에 시집 가 남편과 자식과 시부모와 친척들의 생일 미역국은 수없이 끓였음에도 본인의 생일은 대충 넘어간 주부. 혹은 워킹맘.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해도 생일 자체가 귀찮은, 이제는 이렇게 모이지도 않길 바라는, 사실은 고맙고 눈물이 나는, 92살의 노인.


여기까지 왔는데, 앞만 보고 왔는데. 지나간 세월에 서러운 눈물. 서산 넘어가는 청춘, 너 가는 줄 몰랐구나. 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박자도 음정도 안 맞지만 가사를 보지도 않고 술술 나온 옥련씨의 노래. 내년 생일에 또 청해들을 수 있기를. 나 또한 외워서 같이 불러보기를.  


숙소에서 보이는 탁 트인 부산바다. 대변항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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