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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pr 26. 2023

재봉의 77년

나의 외할머니 옥련씨의 남편 재봉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재봉은 흙을 파먹고 살았다. 쌀이 없었기 때문이다.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많았다. 나무껍질을 뜯어먹고 채소 시래기를 삶아 먹었다. 서럽진 않았다. 다들 그랬다.


재봉은 얼굴도 모르는 색시와 결혼했다. 그건 색시도 마찬가지였지만. 결혼하자마자 색시를 두고 전쟁에 나갔다. 색시는 재봉도 없이 시집살이를 했다.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경주 군 병원으로 누군가 면회를 왔다. 당연히 색시겠지. 형수였다. 형수는 색시가 면회 오면 안 된다고 막았다고 했다. 어머니도 안 시키는 시집살이를 형수가 시키고 있었다. 색시를 감싸면 색시가 더 힘이 들게지. 티 내지 않았다. 다들 그랬다.


오로지 밥을 굶지 않는 게 인생의 목표였다. 사촌 형님의 추천으로 한일펌프 가게를 냈다. 아침에도 일했다. 밤에도 일했다. 일요일에도 일했다. 장사가 잘됐다. 펌프도 선풍기도 난로도 없어서 못 팔았다. 부산 시내 큰 건물에 펌프를 안 댄 곳이 없다. 자식을 다섯 낳았다. 사립 초등학교를 보냈다. 대학도 보냈다. 자식이 자식을 낳을 때까지 39년을 일했다. 다들 그랬다.


하루는 속이 안 좋아 보훈병원에 가서 약을 타왔다. 공짜다. 국가가 재봉을 위해 챙겨준 유일한 혜택이다. 그 길로 재봉은 드러누었다. 암이었다. 소화가 안된 게 아니라 속에 암 덩이가 들어차 있던 거였다. 가게도 멈췄다. 죽을 때까지 일만 한 꼴이다. 다들 그랬다. 고 하기엔 억울한 삶이었다.


돈이 많았던 재봉은 제대로 돈을 못 썼다. 유일한 사치는 아들딸과 손주를 모아 맛있는 한우를 양껏 먹이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소주도,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던 재봉은 앓은 지 석 달 만에 죽었다. 재봉은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말했다. 가게 40년을 못 채웠다고.


나의 외할아버지 재봉이다. 누구네 할아버지처럼 명성 높은 학자도 아니고, 누구네 할아버지처럼 세상을 주무르는 고관대작도 아니었지만 나의 외할아버지 재봉은 그의 이름처럼 커다란 봉우리로 우리를 감싸주었다. 재봉의 제사가 곧이다. 벌써 16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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