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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Apr 23. 2023

할머니의 소원

4월의 삼광사는 빈 틈이 없다. 처마 끝까지 빽빽하게 달린 연등이 온 절을 뒤덮는다. 5월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가장 분주한 달이다. CNN은 꼭 가봐야 할 한국의 명소로 삼광사를 꼽았다. CNN이 여기까지 왔다고? 의심스럽다. 하지만 실제 설치된 연등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신도만 37만 이랬다. 신도들이 등 하나씩만 달아도 37만개다. 그리고 그 신도중엔 나도 있다.


실제 신도가 그만큼 많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연등에 이름이 한번이라도 적힌 이를 신도로 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신도다. 나의 외할머니 옥련씨는 25살부터 삼광사를 다녔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내 출생의 안위를 위해, 태어나고선 무병기원을 위해, 학교에 다니고선 학업성취를 위해,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땐 아기성불을 위해 해마다 이름이 올랐다. 나뿐만이 아니라 옥련씨의 남편, 자식,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는 다 삼광사의 연등에  매해 이름과 나이와 주소와 소원이 올랐다.


연등은 철저히 계급이다. 석가탄신일에 절이나 가서 보시나 한 그릇 얻어먹을까 하고 들른 뜨내기손님이 다는 등은 만 원이다. 밥은 못 먹는다. 터져나가는 인파에 밥을 줄 수가 없다. 대신 두유 하나와 빵 하나를 준다. 그러니까 만원에 빵 하나다. 옥련씨는 빵을 최소 200개는 받는다. 200개 개별의 등을 다는 게 아니다. 33인의 이름을 하나에 적을 수 있는 거대한 연등이 있다. 큰아들네, 큰딸네, 둘째딸네, 작은딸네, 작은아들네, 돌아가신 남편 그리고 출가한 나까지. 33인 등을 7개 단다.


33인 등에는 33개의 띠가 달린다. 부산 동래구에 살고 있는 37살의 박소디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33개의 띠를 적는다. 이름, 주소, 나이, 소원까지 33번을 반복한다. 신도들은 지리한 이 작업조차 일종의 수행이라 여긴다. 글을 적는 것이 서툰 옥련씨는 나의 엄마에게 보통 그 작업을 맡긴다. 무교인 나는 옆에서 쏘가지를 부린다. 부처님은 등 하나 안 달아도 뭐라 안 할 분이다, 교회나 절이나 똑같다 꼭 돈 수백을 써야하나, 컴퓨터로 다 되는 세상에 수기로 이걸 왜 적냐, 엄마와 옥련씨는 대답이 없다.


하루는 옥련씨가 나에게 종이와 펜을 들고 다가와 부탁했다. 내 엄마에겐 맡기기 그래서 소디 니가 시간이 나면 적어달라고. 좋은 날 좋은 시 열반. 찢긴 메모장에 삐뚤빼뚤 적힌 여덟 글자에 나는 되물었다. 할머니. 이거 누구 이름 적는 건데? 응 내 이름이지. 33개 적어야 되는데 내는 도저히 못 적겠다. 소디 니가 좀 적어줘라. 아흔에 가까운 옥련씨의 소원은 좋은 날, 좋은 시에 죽는 것이다. 수십 번 적고 기도하고 빌고 연등까지 달아서 이뤄졌음 하는 소원이다. 펑펑 울며 33번을 적는 동안 옥련씨의 소원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옥련씨는 아흔이 넘었다. 아직 그 소원은 공원(空願)이다.


옥련씨의 필체, 옥련씨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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