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x만 가면 재벌이 된다

by 소디짱

금요일 오전, 이미 그 곳은 길게 줄이 늘어섰다. 주차부터가 힘들다. 나도 정말 오랜만에 큰 맘 먹고 왔다. 그래서일까, 그 곳 앞에 다다르니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진다. 모두들 돈을 쓰고야 말겠다는 일념이 가득하다. 허락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드디어 다가온 내 차례. 폭염 속 15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신분증을 보여준다. 삐빅, 통과입니다. 드디어 펼쳐진다. 플렉스의 세상. 바로 px로의 입장이다.


px는 국군복지단에서 운영하는 군마트다. 이제는 아저씨라 부르기도 민망한, 어쩌면 조카뻘의 현역 군인의 복지를 위한 마트다. 복지 중의 최고 복지는 뭐다? 돈이다. 물건이 싸다. 과자가, 냉동식품이, 우유가, 아이스크림이 싸다. 특히 화장품이 싸다. 올리브영에서 세일해도 22000원인 아비브 에센스가 8000원이다. 달팽이크림은 닥터지 회사를 먹여살린 효자상품이다. 휴가 나온 아들이 툭 던진 화장품이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나 전국구 히트템이 됐다.


그런데 군마트는 현역 군인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관생도, 부사관 후보생, 군무원, 국방부 공무원 등 군 관계자도 포함이다. 끝이 아니다. 군 관계자의 가족, 10년 이상 복무 후 전역한 군인, 국가유공자도 포함이다. 그런데 그 가족의 범위가 배우자, 자녀, 부모님, 배우자의 부모님까지 넓다. 형제, 자매는 빠져서 다행인걸까. 이 범위에 해당하는 이가 어마무시하기에 언제나 px는 대기의 연속이다. 나는 입장을 위해 1시간 조금 넘게까지 기다려봤다.


어렵게 들어온 보상심리 때문인지, 저렴한 가격때문인지, 둘 다 때문인지 px만 가면 마음이 동동거린다. 이것도 사야되고 저것도 사야되는데 앞 사람이 막 두개 세개 네개를 산다. 물건이 점점 줄어든다. 나도 사야된다. 조급하다. 쓸어담는다. 충격적으로 싼 물품이 하나씩 있다. 가쓰오부시장국이 1500원 밖에 안 하네? 일단 담는다. 엄마손파이가 3000원? 세 박스 담아. 어느새 카트 2개가 넘쳐흐른다.


낑낑대며 차에 물건을 싣는다. 끝이 안 보이는 영수증을 찬찬히 살핀다. 뭘 샀길래 22만 원이 나온거야. 짜파게티 번들 4500원은 쿠팡보다 비싼거 같은데. 맥스봉 3개 샀는데 1개는 어디 떨어뜨렸냐. 하겐다즈인줄 알고 5개 넣었는데 알고보니 나뚜루네. 근데 가쓰오부시장국이랑 요즘 핫한 메밀장국은 다른거 아냐? 오늘 사온 것들로 밥상 차리면 가속노화다. 신선식품은 1도 없는 장보기에 수십만원을 태워? 팬트리에 물품들을 욱여넣으며 저 구석탱이의 포장도 뜯지 않은 화장품을 본다. 저번에 px갔을때 산거네. 싸다고 쟁여놔 결국 쓰레기통 엔딩. 명품관에서 "저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할 수 없는 나는, 몇천 원 짜리 잔잔바리로 '저기부터 여기까지' 다 사는 기분이 좋았던 건 아닐까. 어제는 샀고, 오늘은 사고, 내일도 사게 될 미지의 소비.


오늘도 덕분에 발뻗고 잡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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