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節因緣

by 소디짱

이 땡볕에 굳이 15분을 걸어 회사존을 벗어났다. 선배는 선글라스를, 나는 양산을 들었다. 폭염이 반가운 사장님은 연신 우리에게 잠깐만요 잠깐만요를 외친다. 저기 안쪽에 자리 있네요. 구석탱이 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선배에게 묻는다. 뭐 좀 드실랍니까. 나는 물. 예. 사장님 여기 물 하나, 비빔 하나요. 아 만두도요.


쫠깃한 밀면보다 더 쫠깃하다. 만두보다 더 훌륭한 사이드 메뉴다. 잘근잘근 모 부장을 씹는다. 얼마 전 소문이 내 귀에 박혔다. 모 부장이 나를 욕했다한다. 부들부들. 니가? 감히? 나도 너 싫다. 선배에게 토로했다. 미주알고주알. 웃긴 건 반년 전까지만 해도 선배와 모 부장은 회사 내 절친이었다. 그럼에도 선배에게 모 부장을 욕 할 수 있었던 건 선배와 모 부장이 손절했기 때문이다.


"시절인연인게지." 역시 선배는 선배다. 두 눈 똥그랗게 뜨고 왜 손절이냐며 뭔 일이냐며 자초지종 팔만대장경을 묻는 나에게 깔끔하게 대답하며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맞다. 모든 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다. 불교용어인지는 몰랐는데, 역시 부처님은 모든 걸 꿰뚫어 보신다. 뒤에선 욕할지언정 앞에선 침 못 뱉는 나도, 내 인생에도 시절인연이라 할만한 2명이 있다.


전학은 참으로 불편한 것이었다. 그때 내게 처음 손 내밀어 준 친구다. 전학하자마자 수학여행을 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가 없었으면 얼마나 움츠러들었을까. 직장인이 되어선 내 자취방에서 3개월 같이 살기도 했다. 그런 친구와 손절했다. 친구가 자기중심적이라는 느낌을 십수 년 받아와 쌓였고, 어떠한 이벤트에서 빵 터져버렸는데 그렇게 인연이 툭 끊겼다. 분기탱천하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가까운 이들에게 화를 냈지만 그 화조차 청춘이었다. 화 낼 여유가 있었던 청춘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이다. 결국엔 손절했겠지만.


다른 한 명은 대학 동아리 선배다. 그러면서 학과 선배기도 하다. 두 살 차이였는데 학생땐 왜 그리 어려웠는지. 그런데 직장인이 되어서도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다. 둘의 직장이 지근거리라 종종 함께 점심을 먹었다. 선배는 사랑을 많이 줬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사랑도 바랬다. 선을 넘는 요구가 이어진 날, 십수 년 만에 선배에게 반항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장문의 문자와 함께 차단당했다. 차단당한 번호에 대고 구구절절 반박했다. 청춘이었다. 열정이 뻗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조용히 만남을 줄였을 것이다. 대놓고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엔 손절했겠지만.


모 부장, 손절한 친구, 그리고 선배에겐 공통점이 있다. 말이 세다. 친구가 없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말이 센 사람도 괜찮다. 안 들으면 되니까. 친구가 없는 사람도 괜찮다. 성향상 그런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데 말도 세고 친구도 없으면 안 된다. 이미 그 사람에게 상처받고 떠난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니까. 나에게 상처주는 이는 내 곁에 두지 않는다. 청춘의 시절인연들이 내 인생의 공부가 됐다. 이렇게 늙나 보다. 그렇게 사나 보다.


최근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었는데... 그 친구도 손절 안했음 함께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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