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 아이와 구마모토 1
구마모토에 가면 꼭 봐야하는 것이 있다. 구마모토 성이다. 일본에 그렇게 성이 많은데 이 곳이 3대 명성이라고. 구마모토에 지진이 크게 났을때 성이 무너져 아직도 복구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관광객이 이 곳을 찾는다. 물론 나는 가지 않는다. 조식당에서 멀리 바라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달까. 관광지는 영 내키지 않는다. 이건 내 의지였다.
구마모토에 가면 꼭 타야할 것이 있다. 노면전차다. 그 역사가 100년이다. 구마모토 성을 배경으로 레트로 감성의 노면전차가 지나가는 샷이 구마모토 여행의 대표 사진이다. 나는 노면전차를 타보고 싶었다. 기관사님이 수신호를 보내는, 덜커덩거림이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오는, 아무 곳이나 내려 그 골목을 돌아보는. 그래서 노면전차를 타보고 싶었다. 이것도 내 의지였다.
구마모토 여행은 망했다. 시작부터가 문제였다. 호텔 프론트에서 3층 방을 배정해줬다. 흠. 일본인은 지진때문에 저층을 선호한다던데. 들어가 커텐을 젖히니 온갖 배관이 나를 바라본다. 딱 사쿠라마치 상점가의 지붕이 창문앞에 있다. 차라리 다른 호텔 창 뷰가 낫다. 이건 아니다 싶어 전화를 하니 바꿔준댄다. 장난하나. 혹시 혐한당한건가. 새 방은 10층이다. 사과도 안 한다. 다시 유모차와 캐리어를 들고 방을 바꾼다. 조금이나마 넓게 쓰려고 코너방을 예약했는데, 다시는 안 한다. 엘리베이터와 멀어도 너무 멀다.
저녁 먹기 까지 시간이 남았는데 점심도 못 먹어서 배가 고프다. 남편이 우유와 타마고산도와 카츠산도를 사왔다. 그래. 일본은 편의점이지. 근데 저 사람, 많이 고팠나. 차가운 샌드위치를 흡입한다.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탈난다. 잔소리하기 싫었는데 내 뇌를 안 거치고 먼저 나간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내 말은 귀를 안 거치고 그냥 흘린다. 10년차 모토. 내가 맞고 너는 틀렸어. 하지만 이번엔 너가 틀렸다. 남편은 내 말을 안 듣고 배탈이 났다. 그것도 여행 내내.
나는 J다. 계획한다. 망했다. 이온몰 일정은 취소했다. 마트털기를 제일 기대했었다. 동물원은 아이랑만 다녔다. 모노레일도 둘만 탔다. 남편은 저 멀리 벤치에 죽상을 하고 앉아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식시간도 즐기지 못했다. 그래도 사랑은 하나봐. 아예 못 먹는 남편 앞에서 와구와구 느긋하게 먹질 못했다. 그도 J다. 계획했다. 혼자 오마카세를 다녀온다 했었다. 하지만 그는 갈 컨디션이 아니었다. 당일취소는 안됐다. 결국 내가 갔다. 나는 굳이 스시를 먹고싶지 않았다. 토요일 피크타임에 나와 다른 한국인 둘 밖에 손님이 없었다. 그저 그랬다.
이틀을 꼬박 앓고서야 남편은 정신이 돌아온듯했다. 정신을 부여잡은건지도 모르겠다. 이틀동안 먹지 못해 홀쭉한 얼굴로 주판장에 갔다. 남편이 일본을 가자한 이유다. (나는 이제 일본여행은 별로 가고싶지 않다) 이틀동안 누워있던 남편은 갑자기 쌩쌩해져 사케를 쓸어담았다. 1인 1병 한정템을 사기위해 나까지 끌어들였다. 누구때문에 여행을 망쳤는데. 누구때문에 노면전차도 못탔는데. 누구때문에 애랑 둘이서 쇼핑몰만 돌아다녔는데. 생각하니 빡쳤다. 절로 비협조적으로 행동했다. 두번째 주판장에 들렀을때 빡침 앞에 '개'가 붙었다. 로손 편의점 앞에서, 아이 앞에서, 半 싸웠다. 내일은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우리에겐 온천에서의 하룻밤 밖에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