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는 10점이다

엄마의 관점에서 영화 <대홍수> 보기

by 소디짱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점에 틀고 말았다. 대홍수. 혹평을 넘어 악에 받친 사람들이 호소했다. 대참사. 이 영화는 괴작이라고. 애새끼가 빌런이라고. 30분 보고 껐습니다. 김병우 감독님 영화 만들지 마세요. 별점 1점 행렬이 이어진다. 궁금해서 봤다. 대홍수.


영화는 침대에 엎드려 자는 김다미의 얼굴로 시작한다. 아침인데 우중충하다. 딱 비가 오는 날씨네. 옆에서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들 자인이가 엄마를 깨운다. 엄마. 잠수하자. 눈뜨자마자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김다미는 지친 듯 아들에게 장단을 맞춰주다 아침밥을 차리러 나간다. 레토르트 죽을 꺼내다 미역국이라도 끓여야지 하며 언제 얼려놨는지도 모르는 국거리를 꺼낸다. 그리고 알게 된다. 대홍수를.


대홍수를 피하기 위해 아들과 도망친다. 유일하게 챙기는 건 아들의 약. 아들은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업어달라 한다. 똥을 싼다 한다. 숨는다. 엄마 손을 놓는다. 탈출은 김다미의 회사 사람이 돕는다. 오늘 인류는 멸종한다. 대홍수로. 김다미는 살아남아 새 인류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AI 연구원이다. 종국에는 잃어버린 아들도 찾고 본인도 구한다. 2만 번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김병우 감독은 최근 결혼했다. 아직 애가 없다. 애도 없는 감독이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김다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애도 없는 배우가 어떻게 이런 영화를 찍었지. 나는 새벽 3시에 오열하며 손뼉 쳤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김다미는 '5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 박소디'와 닮았다.


김다미가 집을 나서기까지의 장면들은 아침의 나와 똑같다. 나의 아이는 일어나서 엄마~ 하며 나를 안아주거나, 본의 아니게 발로 내 얼굴을 차거나, 블라인드를 젖혀 눈뽕을 맞힌다. 나는 헤롱헤롱하며 아이의 아침밥을 차린다. 소시지를 구우려다가 이건 아니지 하며 그나마 나을 거 같은 간장계란밥을 한다. 옷 입혀서 어린이집 보내면 끝 아니에요? 하겠지만 내 아이는 극 중 자인이처럼 삐지기도 하고 헛소리도 하고 숨기도 한다. 김다미가 집 밖을 나서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린 이유다.


악평을 남긴 사람들이 제일 이해 못 하는 게 "애새끼가 클 만큼 컸으면서 업어달라 하고 도망치는데 똥 싼다 하노" 이거다. 그런데 아이는 그렇다. 요즘 내 입에 붙은 말이 "100초만 참아"다. 옷 다 입혀서 나가려 하면 엄마 화장실 이런다. 공원에서 한창 놀다가 엄마 똥 이런다. 자인아 옷 없어 쫌만 쫌만 하는 김다미의 대사는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다 큰 애를 왜 업냐고? 유모차도 탈 수 없고 걷기는 싫어하는 아이가 기댈 곳은 엄마의 등뿐이다. 조금만 더 커도 이제 업어줄 수가 없는 엄마는 아이의 떼에 어쩔 수 없이 등을 내어준다.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무겁지. 김다미처럼 아파트 옥상을 향해 올라가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재난상황에서 아이를 업지 않을 엄마가 어딨 을까. 초인의 힘으로 안고도 올라갈 수 있다. 엄마라면.


이 영화는 재난영화도, SF 영화도 아니다. 모성애에 관한 진지한 관찰이자 탐구다. 모성애는 학습될 수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엄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도 많다. 김다미는 2만 번이 넘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모성애를 학습했다. 나 또한 아이가 태어난 2021년부터 지금까지 1500일 동안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혼내고 쓰다듬으며 모성애를 학습했다. 자인이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수천번 그린 그림 장면을 보면서, 언제 찍힌 지도 모르는 설거지 하는 내 뒷모습을 내 폰으로 수십 장 연사로 찍은 내 아이를 떠올린다. 엄마가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는 자인에게서, 옷장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자인에게서, 엄마가 여기 있으랬잖아 하는 자인에게서 내 아이를 본다. 그러고는 눈물의 대홍수가 터진다.


악평을 남긴 이들은 재난에서 SF물로 영화가 스위치 되기 전에 꺼버렸을까. 숏츠가 난무하고 3줄 요약이 기본인 세상에서 30분은 너무 긴 시간이었을까. 얼기설기한 설정, 오잉 하는 개연성, 또잉 하는 CG로 이 영화의 평점을 짜게 주기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눈이 퉁퉁 부어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나를 깨운다. 영화의 시작처럼 어두컴컴한 아침이다. 밖에는 비가 온다. 대홍수를 상상한다.


common.jfif 과작 배우 김다미, 믿고 보는 김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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