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하여

by 소디짱

엄마가 불편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베스트프렌드가 엄마인 친구들이 신기했다. 넌 엄마에게 비밀도 말해? 친구는 의아하다는 듯이 답한다. 엄마한테 못 할 말이 어딨어? 내가 다시 되묻는다. 너네 엄마는 안 혼내? 야. 그런 엄마가 어딨냐? 혼나도 그냥 네~ 하는 거지. 내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넌 엄마가 안 무서워?


엄마가 무섭다. 엄마~ 나 뭐 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엄마~ 나 뭐 먹고 싶어.라고 말하면 이게 얼마나 살찌는데 하며 막는다. 엄마~ 나 어디 다녀올게.라고 하면 누구랑 가냐 언제까지 오냐 라며 제한을 둔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가고 먹고 움직여야 했다. 일기장에 “형준이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 형준이 엄마는 나긋하고 온순하다”라고 적은 걸 들킨날엔 쫓겨날 뻔했다. 항상 엄마 눈치를 보며 덜덜 떨었다. 혼날까 봐.


엄마가 힘들었다. 취직을 하고서 집을 떠나게 됐을 때, 원룸을 구하자마자 엄마는 가장 먼저 유선전화기를 샀다. 마치고 들어오면 유선 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해야 했다. 새벽 1시 2시에 들어오는 날에는 문자 폭격을 맞았다. 엄마가 당장 나를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초조했다. 오후 출근으로 부서가 바뀌었을 땐 일어나자마자 유선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해야 했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엔 유선전화기 벨소리가 빗발쳤다. 농땡이 부릴 재간이 없었다. 빨리 일어나라고. 나를 다그쳤다.


엄마는 모든것을 알아야 했다. 결혼을 하고서도 엄마의 통제는 계속됐다. 시어른에게 안부전화해라, 남편 밥 잘 차려줘라, 옷이 그게 뭐냐(떨스데이 아일랜드 옷 제일 싫어하심), 살빼라. 하루는 참다못해 회사 탕비실에서 빽빽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하라고. 학생 때는 내가 학생이라서 가만히 있었고 취직하고서는 그래도 원룸 보증금 엄마가 해줘서 참았는데 이제 나 서른이고 결혼까지 했다고. 빽빽 소리 질렀다. 지금 봐도 철없지만 그땐 내가 어른인줄 알았다. 내가 난리를 치는것과는 상관없이 엄마의 통제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에게 따졌다. 엄마한테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냐고, 뭐만 하면 부정적으로 말하냐고, 언제 한번 따뜻하게 말해준 적 있느냐고, 나만 보면 지적할 게 그리 많냐고, 어릴 때부터 왜 그랬냐고. 내가 하려는 건 왜 다 주저앉혔냐고, 엄마 눈치만 보며 살게 했냐고. 펑펑 울면서 이야기했는데 엄마의 반응이 황당했다. 본인이 언제 그랬냐고. 본인은 기억도 못한다고. 뭘 그런 거까지 기억하냐고. 엄마, 나한테 사과해. 사과하라면 하는데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엄마가 생각났다. 아이는 팬데믹에 태어났다. 남편의 pcr 결과가 나올때까지 병실은 출입금지다. 오후 4시에 전신마취로 제왕절개를 하고 깨보니 밤 9시였다. 나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더듬더듬 폰을 찾아보니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몇통이다. 집에서 5분거리인데 가보지는 못하지, 깼는지 궁금은 하지, 간호사실에 전화해도 아직 안깼다고만 하지, 애가 타 죽겠다싶을때 내가 깼다 했다. 입이 말라 목소리도 안나오는데 내가 물었다. 본인의 자식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갓 태어난 내 자식의 안부를 물었다. 전화를 끊고 이게 엄마라는 것인가 했다. 배가 욱신거린다. 이걸 세 번 했다고. 배를 세 번 쨌다고. 도대체 엄마는 어떻게 애를 셋 낳은거야.


엄마가 불쌍하다. 나도 안다. 크면서는 여자라 오빠에게 치이고 결혼도 5남매 중 가장 가난한 공무원과 결혼한 엄마를. 남편이 첫 월급을 받아왔는데 그게 양장 한 벌 값보다 적어 뒤로 나자빠진 엄마를. 신혼부터 매일을 부부싸움으로 지내고 막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30년이 지난했을 엄마를. 먹고살려고 부자 친정에 매번 손 벌린 엄마를. 그런데도 첫째 딸 둘째 딸 결혼하며 꿀리지 말라고 살림 한밑천 제대로 떼 준 엄마를. 이제 다 끝인가 자유를 찾을 새도 없이 본인의 엄마가 홀몸노인이 되어 그 케어를 떠맡은 엄마를. 그런데다 큰딸이 애를 낳아 그 애 케어까지 떠맡은 엄마를.


엄마를 이해해 볼까. 8월 마지막주가 여름휴가인데 갑자기 남편이 출장을 갔다. 수능출제위원처럼 모든 연락이 차단돼 꼬마와 나만 여름휴가를 갈까 하며 동동대니 엄마가 같이 간다 한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 쳤지만 엄마는 둘이 어떻게 가냐 한다. 휴가 떠나기 전날 갑자기 남편이 연락도 없이 돌아왔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4명이서 같이 가자 하니 불같이 화를 낸다. 진서방이 있는데 내가 왜 가니? 내가 제주도를 가고 싶어서 간다 한 줄 아니? 너랑 꼬마가 걱정되니 간다한거지. 할머니는 내가 없으면 안되니 이모며 아빠며 다 스케줄 조정해 놨는데 어휴. 또 바꿔야 하네. 어휴 내 팔자야. 엄마, 내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화를 내.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짜증이 나지 그럼 안 나니?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난다. 딸에게 이렇게밖에 화를 낼 수 없는 엄마 성질이 싫고, 딸과 손자와 함께 제주도를 가는 것 마저 휴가가 아닌 돌봄이기만 한 엄마 상황이 밉고, 이모 외삼촌은 철마다 놀러다니는데 엄마는 어디 갈라치면 이리 욕을 보는게 짜증난다. 할머니만 아니면, 나만 아니면, 내 아이만 아니면 엄마도 어디 매이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아이를 낳으며 굳세게 다짐한 것. 내 아이에게 절대로 짜증 내지 않기. 기분을 태도로 만들지 않기. 내 아이는 나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하기. 전화를 끊고 다다다다 오는 엄마의 카톡을 읽지 않는다. 엄마가 싫으면서도 엄마가 미우면서도 엄마의 상황을 알면서도 엄마를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엄마와 결국 싸우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엄마에게 기생하는 내가 이 씬의 가장 나쁜년이기에.


엄마가 되어도 엄마를 헤아리지 몬하는 불효녀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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