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고
영화값이 너무 올랐다. 평일에도 15000원이다. 영화가 아니어도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2시간의 유희를 위해 15000원을 갖다 바치기엔 조금 부담스럽다. 통신사 신용카드 할인신공으로 두 사람에 10000원 주고 보던 호시절은 이제 사라진 걸까. 그래도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마침 영화의전당에서 상영 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중에 끝까지 못 본 작품은 딱 하나다. 송강호 강동원 아이유가 나온 ‘브로커’다. 한국 사람이 한국 배우가 나오는 일본 영화를 제대로 못 본 게 아이러니다. 나머지 작품들은 최소 3번 이상 봤다. 가장 많이 본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몇 번 봤었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엔 더 많이 봤다. 새벽에 아이를 재우고 질질 짜면서 봤다. 내 기준 가족, 아이,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얽어내는데 최고의 감독이다.
‘괴물’은 하나의 사건에 담긴 세 가지 시선을 말한다. 남자 초등학생 두 명이 주인공이다. 엄마는 학교폭력 당하는 아들을 걱정한다. 무책임한 선생을 질타한다. 장이 바뀐다. 교사는 학교폭력 당하는 아이를 걱정한다. 학부모는 오해한다. 본인이 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장이 바뀐다. 엄마가 생각하는 학폭 당하는 아이, 교사가 생각하는 학폭 당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학폭은 없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 둘만 있을 뿐.
오로지 감독의 이름만 보고 찾은 영화였다. 첫 장엔 의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각본을 쓴 게 아니라 이런 걸까. 전개가 뻔한데. 칸에서 각본상 받은 거 맞아? 교사가 괴물이란 거야? 두 번째 장에서도 의아했다. 아. 교사가 괴물이 아닌 건 알겠는데. 그럼 학교가 괴물이야? 휘몰아치는 마지막 장,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뛰어가는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깨닫는다. 괴물은 이 영화를 보는 나네. 괴물을 찾고 있는 나네. 확신의 함정은 얼마나 위험한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급 숙연해진다. 내가 유일하게 보는 티비 프로그램 나는솔로. 본방이 끝나면 인터넷 세상에선 득달같이 방송평이 올라온다. 그 방송평은 대개 출연자에 대한 악평이다. 피디의 시선으로 편집된 1시간짜리 영상에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진다. 비단 나는솔로 뿐이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특히 연예. 사람들은 괴물을 찾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괴물을 널리 널리 퍼뜨린다. 본인이 괴물인 줄은 모른 채.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다.
이동진 평론가의 ‘괴물’ 한줄평이다. 오해를 경유해서 이해를 이르는 경험 끝에 관객은 그 햇살 아래서 증인이 된다. 반짝이는 영화 속 아이들을 떠올리며 반성해 본다. 오해에서 그치지 않고, 이해를 하려 애써보기를. 그래서 감히 증인이 되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