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취하는 밤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의 유명한 술이 있고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보통 와인과 어울리는 이미지는 고급스러움/ 파티 / 여성스러움 등이고, 맥주와어울리는 이미지는 스포츠/ 치킨/ 땅콩 등. 와인보다는 조금 더 친근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소주
내가 느끼는 소주의 이미지는 서러움이다. 누군가 나에게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면 난 가장 그날 가장 편한 옷을 입고 나간다. 가장 편한 옷과 가장 편한 마음으로 가서 편하게 나를 내려놓는다.
직장상사에게 한마디도 못했던 내가, 소주만 먹으면 주저리 주저리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애교도 못 부리던 내가, 소주만 먹으면 이상한 애교를 부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내 가족 이야기도, 20년지기 친구에게는 술 한잔 했다는 이유로 털어놓기도 하고,
이상하게 소주만 먹으면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꼭 끝 에는서럽고, 슬프고, 기억에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도모르게 해 버린다. 심지어 기억도 못한다.
나도 취하고, 너도취해서 우리 모두가 취해있다.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아무도 그 날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할 지라도 우리는 마시고 또 마신다. 다 같이 원샷을 외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 그게 바로 사람냄새 나는 삶이 아닌가 싶다.그렇게 털어놓으며 우리는 또 아등바등 산다. 후련하기도,후회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술 한잔하면서,내 걱정이, 내 근심이 조금씩 가벼워지는가 보다
얼마 전 영화 히말라야에서 황정민이 한 대사가 생각이난다.
해발 7천, 8천미터 올라가면 철학적인 생각이 막 떠오를 것 같죠? 그런데 안그래요. 너무 너무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 제 얼굴이 나옵니다. 비로소 가면을 벗는 거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맨 얼굴을 모른 채 살아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나에게 히말라야는 소주 인 가 보다히말라야만큼 고통스럽진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에. 3천원만 있으면 나는 언제든 히말라야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