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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을 여름 Jan 21. 2023

아프지만 감사합니다.


방학이 길다.

겨울방학은 유난히 더 길게 느껴진다.


추워서 못 나가고.

눈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워 못 나가고.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라 못 나가고.

이런저런 이유? 핑계?로 방학 내내 계속 집에만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그래도 하루종일 24시간을 같이 붙어있다 보니 하루에 한 번은 꼭 곡소리가 난다. 곡소리의 주인공은 대체로 우리 집 공주님이지만.


아무튼 집에만 있어도 하루에 한 번 아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해줘야 하기에, 오늘도 아이들과 안방 넓은 침대 위에서 공놀이를 한다.


큰 아이와는 골키퍼 놀이, 작은 아이와는 가볍게 공주고 받기. 한 사람당 5번씩 하고 순서를 바꾼다.


월드컵 이후 축구에 더 푹 빠진 큰 아이와는 골키퍼 놀이를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침대 밑에서 바람 빠진 말랑말랑한 공을 차주면 아들이 침대 위에서 골키퍼처럼 몸을 날려 공을 막는 거다.


공포증이 있어 공만 날아와도 저절로 눈이 질끈 감기는 나지만, 그래도 아들 엄마니까, 엄마는 강하니까, 난 오늘도 아들에게 있는 힘껏 공을 뻥 차 준다.


"와~엄마 진짜 못한다~ 또 헛발질이야? 아빠는 잘 차 주는데!"


나름 신중하게 집중해서 잘 찼다고 생각했는데, 또 공이 빗나가고 말았다.

내가 못 찼으니 핀잔하는 건 오케이 그렇다 치고, 느닷없는 아빠와의 비교는 나의 오기를 발동시켰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겠다고 아들에게 큰소리치고는

공에서 두어 발 떨어진 지점에서 까치발까지 들고 도움닫기 하는 것처럼 다다다닥 달려가 공을 뻥 찼다.


그 순간 철퍼덕 빡!


난 중심을 잃었고, 빡! 소리와 함께 마룻바닥에 뒤로 벌러덩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 아.. 아! 아악!!"


아이 둘 다 제왕절개로 낳았고 그 큰 통증에도 악 소리 한번 낸 적 없는데, 이 통증은 강도가 서서히 세졌다. 그러니 악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들 눈앞에서 미끄러진 것도 너무나 무서울 텐데, 엄마가 마룻바닥에 꼼짝없이 누운 채로 악소리만 내니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아들은 지금 당장 아빠한테 전화하겠다고 난리난리.

딸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 괜찮냐고 난리난리.


이런 고통은 처음이라 그냥 통증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고 싶은데 아이들은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아이들이 안심하게 다독여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순간만큼은 나를 먼저 생각하고 싶었다.


"엄마 괜찮아질 때까지 혼자 좀 내버려 둬~"


그렇게 차가운 마룻바닥에 누워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넘어진 적도 없고 이런 통증도 처음이라, 잠깐 몇 초 정도 119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그냥 있어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안방 침대로 가서 누웠다. 왼쪽 엉덩이뼈 쪽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누워있기가 불편해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거실에서 소곤소곤 얘기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오빠! 나중에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

"알겠어. 우리 빨리 우리 할 거(학습기 공부)하자!"


잘못한 것도 없는 아들이 사과한다는 것도 웃기고, 갑자기 생뚱맞게 공부하는 것도 웃겨 나도 모르게 저절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들은 뭔가 공부를 하면 엄마가 좋아할 것 같고 또 엄마를 도와주는 거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거실에서 조용히 자기들 할 거 하더니

드디어 다 끝냈는지 아들은 스스로 굉장히 뿌듯해하며 나에게로 와서 말을 건넸다.


"엄마! 나 영어 적는 거 그거 다 끝냈어!"

"우와! 그 양 많은 걸 다 했어? 대단하네~"

"엄마! 이제 당분간 나랑 축구놀이 안 해도 돼! 하지 마! 엄마는 그냥 쉬어!"


엄마는 그냥 쉬라는 말이 왜 이리 고마운지,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였다.




가만히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여서 감사하고,

이 정도 통증으로 끝난 것에 감사한다.


올 해는 또 얼마나 더 좋은 일이 있으려는 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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