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필요 없는 게 없어~ 너를 팔자~! 우리 집에는 너만 필요 없어~ 너만 없어지면 돼~"
오늘 둘째 아이 등원시키다 유치원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가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오전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초등학생들은 모두 이미 등교한 상태였고, 거리에는 그 아이와 엄마, 그리고 딸과 나 우리 넷 뿐이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묘하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엄마 옆에서 아들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칭얼거리며 학교 가는 방향과 반대로 뛰어가려고 했고, 아이 엄마는 곧바로 아들 팔을 잡아당겼다.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던졌다.
"나 팔 거라고 했잖아!"
아이를 달래줄 거라고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아이 엄마는 여전히 묘한 웃음을 유지한 채 곧바로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자꾸 그러면 맞는다! 지금 학교 가는 사람이 어딨어? 너만 늦게 가잖아~!"
그 사이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그 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갔다. 한껏 토라진 아이를 달래줄 마음이 그 엄마에게서는 없어 보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 '나눔 장터'가 있는 날이라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가야 되는 상황이었을 거다. 아이는 준비물을 챙기지 않아서 엄마한테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 아이 엄마의 대답은 너무나 생뚱맞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은 말이었다. 물론, 오늘 내가 본 것이 단편적이라 그 아이의 엄마와 아이를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그 아이와 엄마를 본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어서 나 나름대로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티격태격 여전히 실랑이를 하며 학교로 향하는 그들 모자(母子) 뒤를 우리도 천천히 따라갔다.
"아무개야!!"
지각 때문에 예민해진 그 아이 엄마는 축 쳐진 채 느릿느릿 걷는 아이 때문에 결국 폭발한 것 같았다.
아이 이름을 듣는 순간,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였는데, 더 춥게 느껴졌다.
그 아이 이름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우리 집 큰 아이는 학교,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라, 난 자연스럽게 큰 아이 학교 친구, 학원 친구 이름까지 다 알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 자주 언급하는 친구 이름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오늘 아침 둘째 등원 길에 들었던 그 아이 이름이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최근에 축구 수업에 새로 들어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수업 때도 장난을 너무 많이 치고 선생님 말도 안 듣고, 또 집에 갈 때도 그 친구 때문에 자꾸 늦게 오게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었다.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아이도 그 아이 이름을 언급하며 다 하나같이 똑같은 불평불만을 했었다. 너무나 말썽꾸러기여서 학원 선생님들도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할 정도였다.
나도 아들 말을 들었을 땐, 그 아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둘째 아이 등원 길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난 온몸이 굳어지면서 동시에 스스로 반성부터 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구나.'
아무리 농담이어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건데, 그 아이 엄마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저런 말을 그것도 웃으면서 하다니, 난 정말 속으로경악했다.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저 황당한 광경을 우리 집 5살 둘째가 유심히 쳐다보다가 나를 보며 한 마디 하였다.
"엄마, 사랑해!"
5살 아이의 눈에서도 저 모습은 비정상적이고 무서운 느낌으로 다가왔나 보다. 둘째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랑 표현이 어떤 감정으로 얘기했는지 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휴대폰으로 축구 수업 단톡방에 그 아이 엄마 카톡 프로필 사진을 눌러봤다.
'아무개는 축구할 때가 멋있어♡'
물론 본인 자식이니 사랑하는 건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아이가 느낄 만큼 충분한 사랑을 표현해 주심이 어떨지. 아이 키우는 게 힘드시다면, 오은영 선생님처럼 전문가와 상담을 받아보심이 어떨지. 그 아이 엄마 카톡에서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지는데, 정작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보이는 모습은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아동학대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니, 참 생각이 많아진다.
종종 지각하는 아무개의 모습, 주위의 시선은 1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아이를 타박하는 그 엄마의 모습,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아이 혼자 거리를 다니는 모습 등 그동안 내가 수차례 목격한 바로는 아이한테서 결핍이 느껴졌다.
오늘 아이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완성이 되었고, 난 그 아이한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