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밝을 여름 Sep 16. 2022

사람은 상대적이다.


우엉조림하려고 우엉을 손질하고, 잘게 채 써는데, 뜬금없이 엄마가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내 결혼식 얘기하다가 엄마가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니 결혼식 날, 예식장 안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했다이가. 자리에 앉으니 머리 해 주는 사람이 말을 시키대~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한참을 지나서 옆을 딱 보니, 사돈이 옆에서 머리를 하고 있더라고~ 사돈은 거의 다 끝난 상황이었는데,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이가. 아니 먼저 와있었으면, 사돈 왔냐고 인사라도 하던지, 나는 그것도 모르고 주저리주저리 얘기 하고 있었는데 나만 얼마나 우스운 사람 됐겠노? 아니, 먼저 와서 머리하고 있으면서 왜 인사를 안 했을까?

하여튼 사돈이 먼저 머리하고 나갔는데, 사돈 머리 했던 미용사가 내보고 "따님 시집살이 좀 하겠는데요? 어찌나 까다롭게 구시는지..." 하면서 툴툴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니까."


결혼식 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처음 듣게 된 나는 솔직히 티는 안 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나도 당시 어머님 대하기가 너무 어렵고 불편했었기에, 엄마의 얘기가 더 크게 와닿았다.

앞으로의 내 결혼생활, 내 삶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때는  '따님, 시집살이 좀 하겠는데요? 어찌나 까다롭게 구시는지...' 이 말이 어머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면 항상 떠올라 나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어머님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존재이구나.'하고 어머님에 대한 이미지를 굳혀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머님과 같이 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살기도 하고, 또 가까이 살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던 부분들도 알게 되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도 풀게 되면서, 자연스레 편견의 벽이 허물어졌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서로의 '발톱에 때'까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머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결혼 10년 차가 되어, 그때 결혼식날 있었던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니, 어머님이 아닌 그 미용실 직원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

왜 그 직원은 그런 얘기를 해서, 엄마한테나, 나한테나 어머님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심어줬을까.

직원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또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 못 하겠지만, 우리는 어쩌면 한평생 함께할 가족이 되는 사이인데, 자신의 불만을 너무나 쉽게 감정적으로 내뱉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 직원이 그때 그 순간 침묵했다면, 어머님에 대한 나의 인식이 달라졌을 수도.





저녁에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전화였다.

남편은 들뜬 목소리로 조금 전에 배송된 홍삼 박스가 어머님이 보내신 거라고 했다.

난 내가 주문한 택배가 아니면 아예 뜯어보지 않기에, 좀 전에 배송된 홍삼 택배도 당연히 남편이 산거라고 생각하고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 그대로 올려뒀었다.


남편 얘기 듣고 택배 상자를 보니, 어머님이 보내신 게 맞았다. 그러면서 남편 하는 말이 어머님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하나씩 먹으라고 홍삼을 두 개 사서 보내셨다고 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걸 알아서, 그리고 그 부분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어서 이제는 내 거 안 챙겨주셔도 전혀 마음 상하거나 기분 나쁘거나 그렇지 않은데, 어머님의 갑작스러운 챙겨주심에 뭔가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감동받아 아주 따뜻한 마음이 충만한 채로 난 어머님께 감사드린다는 카톡을 보냈다.

곧바로 이어서 온 어머님 답장엔 건강 잘 챙기라는 말과 함께 ❤️하트 이모티콘이 있었다.

말도 별로 없으시고 표현도 잘 못하시는 어머님이 보내신 하트 이모티콘이 오늘은 뭔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 박순분 여사님이 자주 하시고 늘 강조하시는 말이 있다.


'사람은 상대적이다.'


오늘 특별한 홍삼 선물을 받고 나니, 엄마가 자주 하시는 저 말이 순간 탁 떠오르면서 가슴 깊이 와닿는다.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어머님을 대하니, 어머님도 그런 나의 진심을,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어머님 역시 진심으로 나를 대해 주시는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지고 흐뭇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