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곧 도착한다는 남편 전화에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가 남편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아들이 내 옆으로 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요리 잘해?"
"요리? 잘하는 편이지."
자신 있게 말하는 나의 모습에 아들은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하고는 소파로 돌아가 앉는다.
손은 분주하게 요리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방금 내가 한 말을 떠올린다.'요리 잘하는 편이지.'이 말을 내 입으로 하다니, 나 스스로가 생각해도 우습다.
최근까지도 누가 요리 잘한다고 칭찬하면, 난 항상 "그냥 요리 좋아해요. 헤헤."라고 대답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요리전문가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분들에 비하면 난 뭐 아무것도 아니니 그리고 스스로도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요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게 가장 맞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요리 잘해?"라는 아들의 물음에 "요리 잘하는 편이지."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예전에 어머님집에 갔을 때, 무슨 얘기를 하다가 어머님이 나를 보며 이렇게 얘기했었다.
"너 요리 잘하는 편이지."
그 순간 바로 웃기는 했으나, 속으로는 뭐지? 이 애매한 표현은? 했었다. 잘하면 잘하고 못하면 못하는 거지, 잘하는 편이라...칭찬 같긴 한데, 뭔가 영 개운하지 못한 느낌에 혼자 괜히 그 말뜻을 곱씹어보기도 했었다.
'잘하는 편'이라는 말이 듣기에 따라 그리고 상대방의 어투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직설적 화법인 어머님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어머님이 내게 한 '요리 잘하는 편'이라는 이 표현은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잘 안다. 어머님이 내게 한 그 표현 속에는 나를 알고 지낸 10년의 세월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하고 본격적으로 하기시작했는지 생각해 보니, 신혼 초 시댁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우리가 시댁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 냉장고가 있었는데, 우리 냉장고에는 부산에서 친정부모님이 보내주신 음식들로 늘 가득 차있었다.
친정부모님도 따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신 건 아니었지만, 주변 분들께 늘 베푸시고 또 주변분들의 신뢰를 얻은 덕분인지, 항상 여기저기서 많이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것을 두 분은 안 드시고, 모으고 모아 큰언니네, 작은언니네, 그리고 우리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셨다. 당시 시댁에서 살고 있어안쓰럽게 생각하셨는지 나를 더 특별히챙겨주셨다. 엄마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큰 아이스박스로 포장된 택배를 시댁으로 보내주셨다.
큰 택배가 도착하면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는 했었다. 어머님도 절약을 하시는 분이라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택배 속 음식들이 우리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택배 속 음식들은 어머님이 그동안 안 드셔보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있어서 내가 그것들로 요리를 해서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다.
당시 어머님은 20여 년을 일만 하신 상황이었기 때문에 늘 드시는 것만, 그리고 자식들이 좋아하는 고기위주로만 요리를 하셨다고 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리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음식들로 내가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서 드리니 참 좋아하셨다. 초보 요리사임에도 내가 한 요리들이맛있다며 항상 좋은 반응을보여주셨고,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어머님의 칭찬으로 난 요리에 더 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엄마아빠가 보내주신 택배 속 음식들로 요리하는 건 나에게도 항상 새로운 도전이었다. 검은 봉지 안에는 뭐가 들어있나 하고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안에는 일일이소분해서 깨끗한 투명비닐에 넣어 꽁꽁 얼린 머위나물이며, 머위대며, 두릅이며, 박나물등 온 세상 나물종류들은 다 있었고, 고사리, 부지깽이, 취나물 등 말린 것들도 종류별로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배 선장님인 엄마 친구 남편이 직접 잡은 이름 모를 생선들까지, 없는 거 빼고는 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다가 다 적지도 못할 만큼, 엄마아빠는 몇 년을 그것도 매주 한 번씩택배로 먹을 것들을 나에게 보내주셨다.
그러면 난 그것들을 맛있는 요리로 변신시켰다. 아니 반드시 맛있게 만들어야 했다.엄마아빠가 힘들게 정성껏 보내주신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시댁식구들도 나처럼 친정부모님께 똑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보내주셔서 친정부모님께 항상 감사드린다는 어머님의 말을 들으면친정부모님을 대신해서 나의 어깨도 덩달아 으쓱해졌는데그 기분이 이상하게도 참 좋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나물요리는 나의 주특기가 되었고,웬만한 집밥, 한식, 밑반찬은 혼자서 간단하게 후딱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모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종류의 음식재료들을 택배로 보내주신 친정부모님과 나의 요리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신 시어머니 덕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렇다 할 요리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요리 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요리 잘한다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니 이제는 앞으로 어디 가서도 요리 잘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요리 잘하는 편이라고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