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교하는 어른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비교’라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겉보기엔 칭찬 같아 보여도, 그 속에는 은근한 상처가 숨어 있곤 하지요. 저도 어렸을 때, 엄마가 다른 집 아이들과 저를 비교할 때면 정말 참기 힘들 만큼 속상했습니다.
“아무개는 또 1등 했대! 공부를 그렇게 잘한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아무 잘못도 없는 그 비교 대상에게까지 질투와 시기심이 생기기도 했고요.
어릴 땐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또래와 비교되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돈을 잘 벌거나 부모에게 잘하는 자녀와 비교당하곤 합니다.
“누구네 집 아들은 엄마 생일에 여행도 보내드리고, 누구 딸은 대기업 임원이라 월급도 많다더라. 건물 몇 채를 사서 월세 수입도 어마어마하다네.”
이제는 한 귀로 듣고 흘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부모 세대의 무의식적인 자식 비교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건 아니겠지요.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 속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비교 문화의 씁쓸한 단면이 담겨 있습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누구 집 아들이 뭐가 됐다더라”, “딸이 뭘 해줬다더라”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전 세계적인 현상일지도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인 한 분이 어느 날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TV를 보고 있었는데, 능력 있는 연예인 며느리가 소개되는 장면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며느리는 시부모님께 차도 사드리고, 용돈도 넉넉히 드리며 여행까지 자주 보내드린다더군요.
그 장면을 보며 시어머님은 방송 내내 “좋겠다”, “부럽다”라는 말을 반복하셨고, 같은 자리에 있던 그 지인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 한편이 쿡 하고 아파왔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비교나 비난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TV 속 며느리와 자신을 대입하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는 겁니다. 부족한 며느리가 된 듯한 기분에, 감정은 열등감과 자책으로 이어졌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 상황이 시어머니 탓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인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열등감이 투영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 한마디에도 배려가 깃든다면, 이런 불편함은 충분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심코 비교하고 무심코 상처를 남기곤 하지요.
저는 여성이기에, 사례가 여성 중심으로 구성된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결국 비교는 성별, 나이, 관계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거나, 내가 누군가를 비교하려는 순간이 찾아올 때,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비교는 누구를 위한 말이며, 정말 필요한 이야기일까?’
그 짧은 멈춤 하나가, 비교로 인한 상처를 막아주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