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
제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허탈함을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의 책임을 슬쩍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을 마주할 때입니다.
“대호 엄마도 거긴 싫다던데요?”
‘대호 엄마’는 저를 부르는 아이 친구 엄마들의 호칭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꼭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말에 힘을 싣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고, 동공이 확장됩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되뇌게 되죠.
‘내가 언제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제 기억엔 단지 상대방의 말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을 뿐인데, 어느새 “같이 싫어한다고 말한 사람”으로 둔갑되어 버립니다.
물론 큰 악의가 있는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동의 없이 남을 끌어들이는 태도는 그 순간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단번에 무너뜨립니다. ‘책임은 나 혼자 지기 싫다’는 심리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겠죠.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 중에는 자기 합리화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 상황에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 사람도 문제였잖아.”라며 상황과 타인을 탓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간단히 끝날 일들이, 이런 식의 회피와 변명으로 오히려 갈등이 더 커지곤 합니다. 자기반성이 없는 태도는 결국 인간관계에서 끊임없는 오해와 다툼을 낳습니다.
이런 책임 회피는 뉴스 속 사회에서도 자주 등장합니다. 정치적인 실수나 기업의 부정행위가 드러났을 때, 가장 먼저 들려오는 말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누구의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식의 해명입니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금방 잦아들 수 있었을 일들이, 변명과 회피로 인해 더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하죠.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지, 비난받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 마음은 이해되지만, 진정한 어른이라면 누군가 나서서 사과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자연히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교류가 잦습니다. 그래서 제가 떠올리는 사례들도 주로 제 생활 반경 안의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은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거나 다쳤다는 일이 생겼을 때가 그렇습니다. 대부분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에 잘 대처하면 금방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 사이의 문제로 번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으로부터 “누가 누구를 때렸다더라”는 연락을 받았다면, 우선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전후 사정을 파악해야겠지요. 그리고 아이가 실제로 상대를 때린 게 맞다면, 상황이 어찌 되었든 잘못은 분명히 짚고, 상대 아이와 부모에게도 정중히 사과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오히려 상황을 변명하기 바쁩니다.
“자꾸 자기를 자극했다잖아요.”
“세게 때린 것도 아니고, 살짝 스친 거였대요.”
분명 맞았다는 아이가 있고, 실제로 행동이 있었음에도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만을 강조하며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책임을 알고 잘못에 사과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미안하다’는 말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사과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거겠죠. “미안하다”라고 말하면, 내가 전부 잘못한 사람처럼 느껴질까 봐 그 말을 꺼내는 데 주저함이 생깁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린 시절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주 했습니다. 그 진심이 느껴졌고, 관계도 금세 회복되곤 했죠.
진정한 어른이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필요한 순간에 먼저 “미안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요? 그래야 나 자신도 더 단단해지고, 내 아이 또한 자기 책임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