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내 인생의 귀인이자, 현자다.”

by 밝을 여름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는 게

지금까지 오래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거 같아요.

경험이 누적돼서 그것이 속에서 웅성거려야 해요.”


박완서 작가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을 때 속으로 감탄했다. 비록 나에게는 저렇게 완벽하게 표현할 능력은 없지만, 마음은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나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 진부한 말들로 대신하곤 했는데, 박완서 작가의 저 말은 무릎을 탁 치기에 충분했다. 아니, 너무나 완벽했다. 나 또한 가슴속에서 웅성거림을 느꼈기에 펜을 잡았을 것이다.


나에게 ‘브런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나만의 대나무숲이었다. 물론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욕하기 위해 글을 쓴 공간은 아니었다. 그저 말로는 다 쏟아낼 수 없는 것들을 글로 표현해야만 했다. 내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던 날, 가슴이 쿵쾅거렸다. 얼굴 하나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치 사람들 앞에 홀로 서 있는 듯 두려움과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누군가 눌러준 ‘라이킷’과 정성스러운 댓글 하나는 나를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그 반응은 작은 불씨처럼 내 안에서 타올라 “계속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나는 한때 평생 글쓰기와는 인연이 없다고 믿었다. 학창 시절에도 글짓기 시간은 늘 어렵고 버거웠다. 그런데 브런치를 만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내 일상은 어느새 글감으로 가득 찼다. 길을 걷다 무심히 본 꽃과 나무, 아이와 나눈 짧은 대화,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만남 하나까지도 나에게는 쓰고 싶은 문장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이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그것들은 나를 다독여주는 치유의 언어가 되었다.


브런치는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를 넘어 내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글을 쓰기 위해 하루를 돌아보니 자연스럽게 감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기쁨에도 마음을 열고, 슬픔 앞에서도 그것을 기록하며 받아들였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오래 묵혀둔 상처들을 비로소 치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브런치는 내 인생의 귀인이자, 현자다.”라고.


그만큼 브런치는 나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얼마 전 아들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있었다. 아들은 자랑스럽게 필통에 작가의 사인을 받아왔다. 티셔츠에도 사인을 받고 싶었지만, 하필 그날 입은 옷이 검은색이라 사인을 받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 얘기에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그날 밤 혼자 곱씹으며 생각이 깊어졌다. 아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작가’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글로써 공감과 울림을 전하는 사람. 그 무게를 떠올리자 나 또한 언젠가 진짜 작가로서 독자 앞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물론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에서만 ‘작가’라 불리고 있다. 이 또한 감사하고 황송하지만, 아직 책을 출간한 작가는 아니다. 그래서 아들과 가족들 앞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작가는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기록과 성찰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언젠가는 좋은 글을 꾸준히 써서 책을 출간하고, 정식으로 등단하여 가장 먼저 아들의 하얀 티셔츠에 사인을 남길 수 있는 엄마이자 작가가 되고 싶다. 그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크고 소중한 꿈이다.


브런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꿈은 꾸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확신한다. 브런치는 나에게 글을 쓰는 이유이자, 꿈을 꾸게 하는 시작점이라고. 언젠가 내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고, 그 책 속의 한 문장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최고의 작가의 길일 것이다.


동네 아줌마들과의 ‘브런치’ 모임은 즐기지 않지만, 나만의 대나무숲인 '브런치'는 오래도록 애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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