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4시.
폭염으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긴급재난문자가 왔지만, 남편과 나는 집 근처 하천 길을 따라 걸었다. 평소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걸으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고,
오늘 저녁 메뉴를 얘기하고,
이사 이야기를 하고,
노년에 대한 얘기까지 나눴다.
대체로 대화의 주 내용은 현실주의자인 남편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지금부터라도 대비하자는 이야기였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느껴져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주의자인 나는 남편의 말에 조금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편 말 중간중간에 내 생각을 집어넣긴 했지만, 실체 없는 말이고 너무나 이상적인 말들이라 남편은 내 얘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 인생이 상팔자다.”라는 말도 어쩌면 남편이 생계를 책임져 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 말에 따박따박 반박하진 않았다.
그렇게 고온다습한 날씨 속에서도 우리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이미 남의 동네까지 와 있었고, 주변에는 낡은 컨테이너 건물과 장례식장만 보였다.
나는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가자고 했다. 거기라면 반드시 화장실이 있을 테고, 개방돼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급했는지 나보다 앞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나는 고요하고 적막한 장례식장의 풍경에 순간 압도되었다.
운동복 차림이었지만 온통 검은색이라 장례식장에서는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사람들 시선이 덜 닿는 구석에 조용히 서서 남편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 상복 입은 유족들의 발걸음, 부의금 봉투에 이름을 쓰는 조문객들... 그 모든 풍경이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린 두 대의 스크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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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VIP실
OOO, 88세
가족사항
1층
OOO, 49세
가족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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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이름들이었지만, 두 고인의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88세 할아버지는 아내와 자녀, 손주까지 가족사항이 빼곡했다. 대가족의 중심이자 든든한 가장이었을 것이다. 긴 생을 큰 아쉬움 없이 살아내셨을지도 모르겠다.
반면, 49세의 고인은 가족사항이 단출했다. 여동생과 매제, 조카뿐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을 했거나, 자녀가 없는 삶이었을 듯했다.
두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걷다 급히 들어온 화장실에서, 생각지도 못한 장면 앞에서 마음이 멈칫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한 이야기들... 하지만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공간, 장례식장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안고 있던 불안과 고민이 한순간 사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남편과 주고받은 수많은 대화들이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너무 현실적인 문제에만 마음이 쏠리다 보면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놓칠 수 있기에,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항상 균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을 나온 남편과 장례식장을 벗어나면서 나는 남편에게 이 말만큼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말, 예전에는 기피하고 금기시했는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이들과 가장 자연스럽게 나눠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 누구든 언젠가 맞이할 일이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려주자. 그래야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남편도 이번만큼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줬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때때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억할 것이다.
무더운 일요일 오후, 장례식장의 고요함을.
그리고 잠시 멈춰 섰던 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