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요동친 하루

똑같은 하루는 없다.

by 밝을 여름


휴일이라 조금 늦게 일어났다. 누가 깨운 건 아니었지만, 윗집에서 아이들이 다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가니 아이들은 이미 아침 토스트를 다 먹고,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챙겨준 아침이었다. 나도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소파에 앉아 천천히 마셨다.


“다다다다…”


조용한 휴일 아침이라 그런지,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아, 또 손주들이 왔나 보네. 아침부터 어쩜 저렇게 뛸 수가 있지?’ 하며 흘려 넘겼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윗집 쌍둥이 손주들의 달리기 소리에 예민해져 있었다. 우리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처음엔 이해하려고도 하고, 참아도 봤다. 그렇지만 아무 얘기도 안 하면 층간소음이 없는 아파트라고 생각할까 봐, 몇 번은 경비실을 통해 연락을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하다”였지만, 잠시 잠잠해졌다가 또 금세 다다다가 시작됐다. 한번 거슬리기 시작하면 신경이 그쪽으로만 쏠리듯, 남편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아랫집을 배려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듯한 윗집의 태도에 화가 났고, 반복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우리도 아이가 있기에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또 아이가 있기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남편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만을 털어놨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끊임없이 뛰는 건 통제가 어렵거나, 아니면 아예 주의를 주지 않는 거야. 통제가 어렵다면 우리 집처럼 층간소음 매트를 다 깔아야지.”


나는 늘 달래곤 했다.


“여러 번 얘기했는데도 계속 저러는 건 그냥… 그런 사람들이니까, 우리 쪽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괜히 싸움 나면 서로 좋을 게 없잖아.”


그러면 남편은 더 흥분했다.


“저런 사람들한테는 계속 얘기해야 돼. 말 안 하면 모른다니까.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다른 건 대체로 순둥 하게 넘어가는 사람이면서, 층간소음 문제만큼은 물러서지 않는 남편이었다. 내가 더 말하면 결국 우리 싸움으로 번지기에, 나는 먼저 입을 닫곤 했다.


그런데 오늘, 남편은 아침부터 들려온 뛰는 소리에 결국 참다못해 경비실에 연락했다. 잠깐 조용해졌다가 또다시 시작된 다다다에 남편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때 내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화난 남편에게 “왜 자꾸 신경 쓰냐, 신경 쓰지 마라”라며 큰소리를 쳤다. 혹시라도 싸움이라도 나면 어쩌냐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은 “맞장구는 못 해줄망정 왜 나를 나무라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층간소음이 부부 싸움으로 번졌다. 목소리가 커지자 마음 여린 아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평화롭던 휴일 아침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왜 윗집 때문에 우리가 싸워야 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왜 우리가 목청 높여 싸우고 아이까지 울게 하나... 문득 내가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라가서 얘기해 볼게.”


슬리퍼를 신고 곧장 계단으로 올라갔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막상 문 앞에 서니 벨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남편과 싸운 직후라 감정이 격해져 있었기에,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몇 분 서 있자,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남의 문 앞에서 심호흡하는 나를 보고 얼떨떨해했다.


“이렇게 안 하면 너무 감정적일 것 같아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아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아랫집이에요.”


문을 열자마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했다.


“저도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하려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정도면,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온 거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뛰는 소리 때문에 남편이랑 싸우고, 아이들까지 울 정도니 우리도 많이 힘들어요.”


그 말에 할머니는 갑자기 쌍둥이 손주를 불렀다. 뜻밖이었다.


“알겠지? 뛰니까 아랫집에서 올라왔잖아?”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아랫집에서 얘기 좀 해주세요”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눈짓에 응해,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아랫집 아줌마 집에 형아랑 누나가 있는데, 집에서는 절대 안 뛰어. 너희가 뛰면 형아, 누나, 아저씨가 너무 힘들어해. 달리기는 운동장에서만 하기로 약속할 수 있지?”


아이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할머니의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집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참 말 잘하네. 여보가 말하길 잘했네.”


괜히 쑥스러웠다. 그런데 집 문을 여는 순간,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랑 통화하는 거야?”


아들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혹시라도 내가 윗집이랑 싸울까 봐 너무 불안해서 삼촌에게 전화했다고 했다.


'삼촌은 무슨 날벼락이람…'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미안해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엄마가 잘 해결하고 왔어. 싸우지도 않았고. 엄마 말 기억하지? 이제 안 싸울 거야.”


아들은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상황을 찬찬히 설명해 주자, 불안도 사라진 듯했다.


평화롭던 휴일 오전이 한순간에 뒤집히고, 또 반전되는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윗집보다, 층간소음보다, 우리 가족의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은, 그걸 다시 확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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