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by 젠젠


거제로 내려가는 길. 덕유산 IC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계곡 깊숙이 위치한 카페를 우연히 발견했다. 거대한 온실 내부에는 운 좋게도 아무도 없었다. 내가 선곡한 노래가 사방에 달린 스피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그 순간은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해방감에 기분이 널뛰었다. 별 것 아닌 것에 행복을 느끼는 건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거제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여행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긴 여정을 보내고 난 기분이다. 밤바다를 거닐며 무수히 떠 있는 별을 하나 둘 세다 보니 코끝이 시려온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나 보다. 밀려드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다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침대에 누워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에 친정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멀리 여행 간다고 했으니 잘 도착했나 언제 오나 그런 일상 안부 전화였다. 그렇게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중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할머니 쓰러지셨다.”

“네? 무슨 일이야? 어떠신데?”


외할머니가 쓰러지셨단다. 혼자 외출하셨다가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는데 다행히 주변 분들이 바로 발견한 덕분에 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고. 매일 아침 할머니와 통화하던 엄마의 통화기록을 보고 바로 연락을 줘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엄마는 태연한 목소리로 할머니 상태를 전했지만 얼마나 놀랐을까. 괜찮으실 거라고 엄마를 다독였다.


오늘 할머니를 뵈러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금방 꺼져버릴 위태로운 할머니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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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마음은 어떤 걸까? 아직 자녀가 없는 딸에게 엄마는 그 마음을 백번 헤아려도 모를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엄마 마음을 알게 될 거라고. 내가 받아온 부모의 사랑의 크기는 얼마만 할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적이라는데 부모가 되면 내리사랑이 이어질 수 있을까?


부모님은 언제나 끝으로 끝으로 밀려나기만 한다. 항상 자식이 먼저였고 챙겨드리려 해도 다음에. 나중에.라는 말만 하신다. 무엇을 굳이 해드리지 않아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써주는 거에 만족하신다. 이번에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엄마는 더욱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막내딸인 엄마는 다른 형제들보다 유난히도 할머니를 챙겼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매일 안부전화하고 좋은 거 있으면 집으로 보내드리고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곁에 있었다. 이렇게 챙겼음에도 엄마는 그때 그 한 가지 못 해 드렸던 걸 기억하며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바라는 건 이런 소소한 것일 거다. 자주 전화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대단한 성공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분명 어려운 게 아님에도 못하고 있는 게 지금 당장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 하고 있는 건가?


언젠가 부모님의 부재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 가서야 부재의 존재를 의식하고 무언가를 하려 할 때는 늦다. 지금 부모님에게 사랑을 표현하자.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때이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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