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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Mar 20. 2023

나의 카메라 그리고 사진 이야기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무엇을 하든 특별해진다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자연스레 내 삶에 머물고 일상에 물들면서 나와 함께하게 됐다. 내 카메라에 담겼던 모든 사진들은 나의 삶이고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의 첫 카메라는 올림푸스 디지털카메라(CAMEDIA C-740UZ)였다. 기억을 더듬어 구글링 하다 보니 상품설명까지 찾게 됐다. ‘신개발 광학 10배 줌 렌즈 및 3.2메가 픽셀의 고화소 CCD에 의한 초망원, 고화질을 실현’ 이라니. 나름 하이엔드 모델이었나 보다!


이 카메라와의 추억은 첫 해외여행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첫 유럽 배낭여행 때 함께 했었는데 그 당시 사진 찍는 것 자체에는 감동이 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단순 기록을 남기기 위한 도구로써는 최고였다. 두툼하고 묵직했고 작은 액정으로 사진을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 메모리 카드 용량이 턱없이 부족해서 숙소에 복귀하고 나면 그날 찍은 사진을 백업해 두고 다시 여유용량을 만들어 두어야 했다. 이런 것도 다 소소한 추억이다.


당시에는 디지털카메라가 흔치 않기도 했고, 함께 했던 친구들의 기록을 나의 카메라로 공유했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이 카메라 덕분에 그때의 추억을 지금 다시 되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가장 인기 많았던 타워브리지 야경 사진 (출처: 내 싸이월드)


이후 콤팩트한 디자인의 고성능(?)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가볍게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캐논 디지털 카메라였는데 사용하기에는 편리했지만 '사진을 찍는다'라는 행위에 그리 만족을 주지 못했다. 내가 사용하기보다는 부모님 여행 다니실 때 주로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 붐이 일었다. 대세에 따르고자 첫 DSLR을 손에 쥐었을 때 기억이 난다. 나름 사진 좀 찍어봤다고 중급 바디에 여러 종류의 렌즈도 함께 구매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오토 모드로 설정해 놓고 마구잡이로 그냥 셔터를 눌렀다. 이 비싼 걸 사놓고 오토모드가 웬 말이냐. 이제 공부를 시작할 때인가.


그때부터 나의 사진 이야기가 시작됐다. 사진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칠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일상을 기록하고 그날의 감정을 남기는 습관이 생겼다. 별거 아닌 풍경이지만 그 사진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언제나 새로웠다. 이건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늘아래 우리들이 생활하는 곳은 피부로 느끼기에 너무너무 혹독한 날씨였지만, 하늘만큼은 정말이지 청명했다.
창문에 갇힌 하늘과 구름


디지털카메라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무한정으로 피사체를 찍어낼 수 있고, 후보정으로 내가 눈으로 봤을 때와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러한 매력에 빠져 한창 디지털 사진을 즐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날로그 사진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첫 필름 카메라는 아빠가 젊은 시절 사용하시던 펜탁스 MX 모델이었다. 아빠가 물려주신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잘 사용해보고 싶어서. 좋은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사진 워크숍에 참여했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수업에서는 사진의 기초부터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는 실습까지 이루어졌다. 내가 찍은 필름 롤을 직접 현상까지 하는 작업은 생소하고도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 작업으로 아날로그 사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워크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낙안읍성까지 무박 2일로 다녀온 출사는 그날의 사진과 추억 그리고 친구와 함께한 소소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싱그러운 자연 속에 위치한 운주사


원래 물건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카메라 욕심은 많았다. 필름 카메라에서 부터 토이카메라(EXIMUS 외 기타 등등), 폴라로이드까지 5~6종류의 카메라를 갖고 있던 나는 어딜 가든 기본 2개 이상의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사실 거추장스럽고 무겁고 너무 불편했다. 그런데 어딘가를 갔을 때 놓고 온 카메라를 생각하며 아쉬웠던 기억을 생각하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만했다.


필름 카메라의 감성


어디 대단한 곳에 가서 대단한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은 없다. 동네 골목을 거닐며 그냥 지나칠 법한 평범한 골목의 모습을 담고, 이름 모를 풀, 꽃 따위 사진을 마냥 찍어댔다. 사진 찍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담았다. 사진을 핑계로 골목골목을 누비는게 좋았다. 무엇을 찍어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없는 것도 좋았다.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무엇을 하든 특별해진다.  


지금은 어딜 가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정성스럽게 찍기보다는 내 눈을 대신해 기억에 담는다는 일련의 목표로 행위를 행할 뿐이다. 여행을 가서도 그곳에 대한 추억을 대신 기억하기 위해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던 카메라들은 모두 창고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을 갖고 싶다던 나의 열정과 함께.


‘사진’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직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심화학습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더 좋은 사진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함은 자명하다. 사진은 자기만족이다. 나 자신을 투영하는 매개체이다. 이것이 내가 다시 사진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이다.




한창 보케 촬영에 빠져있을 때 작업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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