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재미를 높이는 방법은 그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후루룩 정신없이 스쳐 지나가거나 잠시 머무르는 건 큰 감흥이 없을뿐더러 내 머릿속 메모리에 기록되기 어렵다. 내 기억력이 형편없다는 거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만의 기억창고를 채우기 위해 나의 여행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밀도 (密度)
1. 빽빽이 들어선 정도.
2.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의 정도.
여행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건물을 좋아하는가? 공원을 좋아하는가? 그것에 집중해 보자. 목표를 갖게 되면 여행의 완성도를 높이고 덩달아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나는 골목 여행을 좋아한다. 어느 여행지를 가던지 골목 곳곳을 누비다 보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도, 맛집도,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지나칠법한 어느 흔한 골목이어도 그곳만의 매력이 있다. 물론 인구밀도가 높은 메인 스트리트의 매력도 놓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발 뒤에 숨어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골목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자그레브 골목에서
골목 산책은 그 자체로도 즐길만한 이벤트이다. 주민들의 일상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내가 그들의 일부가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골목도 있고, 때론 지저분하고 쾌쾌한 냄새에 공격받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떠하리. 그것도 다 그곳의 일부인 것을. 초연하게 맞닥뜨릴 뿐이다.
양쪽으로 촘촘하게 들어선 벽 사이로 다니다 보면 이 골목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나타날까. 굽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어떤 모습이 짠하고 나타날지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골목을 한 바퀴 도는 동안에는 볼거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오래된 건물 벽, 그 위에 늘어진 덩굴 꽃, 골목을 비추는 아스라한 햇빛 한줄기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스플리트 골목 풍경
최고의 골목을 꼽자면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돌고 나서 만난 곳 일 것이다. 정해놓은 목적지 없이. 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거닐던 그날의 분위기는 잊을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 펄럭이던 빨래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서는 여기를 절대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수히 셔터를 눌렀다. 그곳에서 그 골목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 골목 산책
여행의 밀도를 높인다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 여행의 콘텐츠(내용)를 빽빽하게 채우는 것일 수도 있고, 그곳에서 심도 깊은 시간을 보내며 그 여행 자체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두어 시간을 보내도 좋고 천천히 골목을 거닐어봐도 좋다. 골목 안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 한 카페에서 지친 다리를 달래며 한 템포 쉬어가자. 이 모든 순간순간이 여행의 밀도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누구나 다 찾을 수 있는 유명한 곳으로 채우는 여행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보자. 그것들로 채워진 여행은 어느 여행보다도 값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