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글 Feb 02. 2019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

크리스마스잖아요

연인을 생각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이 말은 내 연애사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노래는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다.
그와 맞이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 아침은 집에서 맞았다. 이날을 위해 챙겨왔다며 가방에서 빨간 양말을 꺼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초록색 카디건을 입고 함께 집을 나섰다. 점심은 그가 예약한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그는 식당에 들어서며 곳곳을 살폈다. 이 어려운 날 예약에 성공했다는 감흥에 젖은 얼굴이었다. 우린 메인 요리를 세 가지나 주문했다. 입은 두 개였지만 다시 또 이곳을 예약하긴 힘들 테니 온 김에 다 먹어봐야 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눈은 오지 않았던 것 같다. 레스토랑 맞은편 벤치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계셨으니 말이다. 음식을 기다리며 내가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을지 헤아렸다. 맛집을 찾아 앞다투어 식당을 예약하는 열정이, 호기심이, 식욕이 그때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장은 삼성역이었다. 이소라는 자신을 소개한 후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앞으로 부를 곡들이 헤어짐이나 삶에 대해 말하는 곡들이라 자칫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걸 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 우리가 여기 함께했다는 걸 추억할 수 있게 열심히 노래하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반주가 흘렀다. 나는 그때 그가 레스토랑에서 지었던 감흥 젖은 얼굴을 했던 것 같다.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사람 이소라한테 반한 하루이자, 그가 준비한 모든 것들이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없던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꿈의 색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