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zi Sep 30. 2023

21.10.04 오늘의 풀무질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잘 기다리기'를 배우기로 했다.

매일 공지를 쓰며 고민한다. 가게 일이라는 게 썩 다이내믹하지는 않기에 매번 다른 이야기로 말을 건넨다는 건 쉽지 않다. 점장으로서 다양한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가장 큰 일은 역시 '기다림'이다.풀무질에서 일하면서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손님을 기다리고, 들어올 책을 기다리고, 전화를 기다린다. 기다림 끝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그리고 다시 기다리는 일의 반복. 단조롭기 짝이없다. 무엇이 어떻게 올지도 모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도,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모순된 감정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놓고는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보면 마음이 무너지기 일쑤다. 나도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헷갈려하며 그 자리에 딱 붙어버린다. 어느 새 내가 지하에 박제된 가구처럼 느껴진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잘 기다리기'를 배우기로 했다. 그런데 '잘' 기다리는 건 대체 뭐지. 마음을 비우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며 고요히 침잠하는 걸까, 아니면 바쁘게 움직이며 기다리는 시간을 한 톨도 헛되이 흘리지 않고 꽉꽉 채우는 걸까. 물론 둘 다 해봤지만 썩 좋지 않더라. 생각해보면 나는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다. 일터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약속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고, 사과를 기다리고, 때로는 용서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음반을 기다리고, 방학을 기다리고, 성적표를 기다리고, 합격장을 기다리고,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구나. 그 수많은 기다림을 나는 어떻게 버텨냈더라.


나의 기다림에는 언제나 기대가 있었다. 기대에 기대어야만 침묵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 세상은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을 가져다주지만,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예상하고 기대한다. 엄마와의 즐거운 저녁을, 맛있는 급식을, 그래도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나에 대한 배려를, 한층 돈독해지는 우정을, 사랑하는 음악을, 잠깐의 자유를, 어떤 성과를, 기쁨을 꿈꾸는 걸로 기다리는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꿈꾸는 일이 일어나길 기대해야만 기다림도 버텨낸다. 내가 풀무질에서의 기다리는 시간이 답답해진 건 어쩌면 내 안의 어떤 기대와 희망이 죽어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기다림에 지친 내게 작은 소망이 있다면, 더 이상 무언가를 기다리는 풀무질이 아닌, 먼저 부르는 풀무질이 되고 싶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아도, 무엇을 불러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도, 그래도 이렇게 타자라도 두들겨 불러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23.09.30 오늘의 풀무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