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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긋 Sep 30. 2023

23.09.30 오늘의 풀무질

중심을 잡으려면 땅에 발을 붙여야 하고, 붙어있으려면 질량이 필요하다.

연휴는 확실히 한가하다. 특히 명절은 더욱 그렇다. 다들 저마다의 사람을 찾아 떠나가고 풀무질 앞 거리는 갑자기 공허하다. 이맘때쯤이면 공기도 서늘하게 식어 더욱 쓸쓸하다. 가을에는 김광석을 찾는다. 기타 반주와 목소리가 공기의 서늘함에 녹아든다. 가사도 음률도 찬 바람에 제법 어울린다. 봄의 찬란함이 가을의 스러짐으로 옮겨가며 설렘은 그리움이 된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만나지 않는, 만나기 싫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대로 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 번씩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외면하지 못한다. 그럴 땐 깊이 젖어 드는 수밖에 없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흘러야 한다고 했다. 휘몰아치는 기억에는 속절없이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기억의 물살에 완전히 잠겨버리지 않게 끝까지 허우적댈 뿐이다.


풀무질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보냈다. 꼭 풀무질 때문이 아니더라도 풀무질은 내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풀무질에 속한 사람들도, 성균관로 19 지하 1층이라는 물리적 공간도 이제 내게 새로운 안정이 된다. 때로 이 모든 것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더라도 그래서 더욱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중심을 잡으려면 땅에 발을 붙여야 하고, 붙어있으려면 질량이 필요하다. 풀무질은 어느새 내 안팎을 가득 채워서 내게 질량을 주었다.


똑같이 고민한다. 오늘의 나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질량이었는가. 한없는 가벼움으로 오히려 성가신 스침이 되지는 않았는가. 혹은 부담스러운 무게로 불편하게 짓누르지는 않았는가. 모든 순간이 아슬한 줄타기 같다. 오로지 나의 이름만을 책임진다면 모를까, 풀무질이라는 명찰이 내 왼쪽 가슴에 달린 한 나는 이를 닦고 빛낸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진흙이 묻고 더러워지더라도 어쨌든 품고 가야 할 이름이다.  걸어가는 줄의 끝이 아스라이 멀어진다. 알 수 없는 결말이 두렵더라도 지금은 뛰어내릴 때가 아니다.


'소중히 여기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가 취해온 모든 방식이 소거법으로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보냈다. 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우울함이 익숙한 사람은 행복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서 이별을 계속 뒤로 미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잠시 기억에 휩쓸리더라도 나의 중심을 지키며. 오늘은 모든 이의 행복을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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