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그 주에 나온 신간을 훑고 들일만한 책을 찾는다. 문제집이나 정부발간집, 학술서까지 합하면 양이 꽤 되어서 모든 책을 훑지는 못하고 영역별로 살핀다. 보통 살피는 영역은 인문, 역사/문화, 정치/사회 정도. 주기적으로 보다 보면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전체 도서 유행이라는 것도 있지만, 인문 사회 영역만의 유행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고전을 설명하는 책이 많이 나왔다. 잘 알려진 '벽돌 책' 한 권을 요약-해설하거나, 여러 고전을 묶어서 차례로 설명하는 책들이 꽤 보인다. 꼭 고전만 그런 것도 아니다. 저자가 좋아하는 다양한 책을 묶어서 소개하는 '책'도 보인다. 독서의 좋은 점은 간접경험이라고들 하는데, 이제는 간접 독서가 대세인가보다. 한 권으로 여러 책을 읽은 효과를 낸다니, 효율성에서도 탁월하다. 심지어 미리 읽은 사람의 고민도 슬쩍 챙길 수 있다. 책을 읽지 않고 모이는 책모임 전단을 본 적 있다. 읽기모임에 나가면 모임 이끄미가 책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하고, 이를 통해 이끄미가 준비한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어쩐지 겹쳐 보이는 풍경이다. 대신 읽어주고, 방향을 제시한다.
독서의 형태는 인류의 역사에 걸쳐서 변화하고 있다. 먼 옛날에는 책을 읽는 한 명의 낭독자를 둘러싸고 군중이 귀를 기울이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노래하듯이 읽고, 베끼며 읽었다. 홀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독서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책과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도 쉽지 않은 귀한 시간이다. 그러나 역시, 함께하는 독서가 주는 흥미는 또 다르다. 풀무질에서 정기적으로 읽기모임을 이끈 지 3년쯤 지났고, 횟수로만 치면 서른 번이 넘는다. 서른 번의 발제를 하면서 힘들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관둘 생각을 한 적도 없다. 한 번씩 쉬어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발제를 넘긴 적은 있어도 행사 자체를 없앨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건 중요하다. 한 권의 책을 중심에 두고 대화하는 경험은 소중하다. 설령 나와 다른 생각을 품더라도 던져진 주제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공통점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개인의 경험이 극도로 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명백한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서로 다르게 해석하더라도 우리가 읽은 문장은 명백히 같다. 같은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종착지로 향하는 과정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끝없이 겹치고 갈라지는 의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 세계의 양감과 질감은 부푼다. 이 감각을 모두와 함께하고 싶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읽기모임만큼은 끝까지 놓지 못한다.
읽기모임의 주인공은 발제자도, 참여자도 아닌 '책'이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책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읽기모임을 준비할 때 되뇌는 말이다. 책에 씌어 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모임이라면 모인 존재들이 서로 관심을 나누어야 한다. 그중에는 당연히 모임 책도 있다. 각자가 관심을 두게 되는 책의 면면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인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만 쏙 빼놓고 우리끼리 재밌으려면 굳이 '읽기모임', '책 모임'이 아니어도 된다.
곧 읽기모임이 다가온다. 이번 발제는 특별히 몇 가지 질문을 미리 꼽았다. 하지만 내 질문보다 다른 질문이 더 듣고 싶다. 모두에게 다가갔을 서로 다른 책의 얼굴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