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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by 호세

1. 전립선 암에 걸린 의사의 죽음에 대한 초연한 연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불치병 진단을 받아들이는 데는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불신의 단계, 공포와 부정을 반복하는 단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단계, 협상, 분노, 절망의 단계를 거쳐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의사인 작가 스스로는 이 질문에 매우 단순한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없다. ‘



2. 작가가 병원에서 겪은 경험을 비춰보면 환자는 죽을 준비가 되었지만 가족은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 결국 남겨질 사람들은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한 개인의 생이 마감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비통한 삶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족, 친구들을 위해서다. 인간은 완전한 사회적인 동물이다. 진정한 행복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때 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행복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도 않는 미래의 행복을 내가 죽은 후 누리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안다.



3. 그럼 장수하는 삶이 더 나은 삶일까??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들이 곧 150살까지는 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인간이 곧 150살까지 살게 된다면 단지 몇 심 년을 더 산다고 과연 인간의 고통이 줄어들까? 우리가 죽음을 몇 년 더 늦춘다고 해서 우리 삶이 더 의미 있게 될까? 젊은이들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데 노인들의 미래가 되진 않을까?



4.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우리는 죽음을 현실적인 문제이자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죽음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는 방식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한 평화롭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돕는 것은 보살핌과 사랑의 행위다.



5. 도대체 왜 나이를 먹고 죽음에 가까워져서야 나 자신과 과거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걸까? 자식은 부모가 바다에 띄운 작은 배와 같다.


세계를 항해하다가 마침내 처음 출발했던 항구로 돌아오지만 그때는 이미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다.



6. “암을 진단받고 처음 몇 주 동안 식탁에 앉아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이 이 행성의 수많은 장소 중 한 곳인 것처럼 현재는 한 장소이고, 과거와 미래도 그저 다른 장소일 뿐이다. 죽음에 가까워진 지금, 사진 속 어린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로 결합된 블록 타임에 살고 있음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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