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주요 인물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조직하고 실행한 책임자이다. 그는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계획을 주도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남아메리카로 도피했지만, 1960년에 이스라엘에 의해 체포되었고 1961년에 전쟁 범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아 1년 뒤 처형되었다. 그의 재판은 홀로코스트의 잔혹함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 아이히만은 전쟁기간 동안 유대인에게 저지른 범죄가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범죄라는 것을 인정했고, 또 피고가 거기서 한 역할을 인정했다. 그런데 피고는 자신이 결코 사약한 동기에서 행동한 것이 결코 아니고, 누구를 죽일 어떠한 의도도 결코 갖지 않았으며 결코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으며 또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3. 본디 빌라디오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예수시절에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했는데, 이 판결 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4.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이 세 번째의 무능성은 곧 판단의 무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단 능력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판단이란 사유와 의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5. 아이히만은 스스로 이상주의자라고 했다. 그건 단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6. 아이히만은 검찰이나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함,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7. 전쟁을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무사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평범하게 되어버렸다. 아렌트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8. 기술, 특히 미디어 기술이 우리를 점점 더 일차원적으로, 심지어 전체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무사유’를 우리 모두의 모습으로 갖는데 이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