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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세 Sep 24. 2024

무정형의 삶

1. 어떤 말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휴가가 아니라 여행. 여행이 아니라 삶. 한 시기의 삶. 기어이 내가 마련한 삶. 2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저축해 얻어낸 이자 같은 삶. 거기에 합당한 삶의 모양을 위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완벽한 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파리 살기가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로망살기의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2. 19년간 여느 직장인과 똑같이 출근과 퇴근 야근을 밥먹듯이 한 작가님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던 파리에 2달간 살기 위해 떠나 감동하고 사랑한 그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 “얼마를 벌어놨낄래 퇴사를 하냐고요.”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4.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었던 아침 시간을 내 마음대로 써보고 싶어서. 평생을 한결같이 미워했던 아침 시간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찾아주고 싶어서 아침부터 숨 쉬듯 행복해지고 싶어서. 살고 감동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곳이 나의 매일이라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들어낸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5. 읽고 싶은 만큼 읽다가, 가방을 챙겨서 다시 정처 없이 걸을 것이다.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목적지가 될 것이다. 처음 보는 길을 선택할 것이고, 마음에 드는 곳이 보이면 주저 없이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매일 헤매면 매일 다른 모양이 만들어지겠찌. 매일 내가 다르니까. 오늘 치 나를 살자. 딱 오늘 치 나의 파리를 만들자.



6. 스스로를 꿈으로 만드는 데 이토록 성공한 도시가 또 있을까. ’Paris’라는 단어를 새기기만 해도 팔리는 상품들이 있다.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꿈꾸는 얼굴로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파리라는 단어 속에서 각자의 꿈은 다르겠지만 그 배경엔 언제나 에펠탑이 있다.



7. 나의 몇 안 되는 재능 중 최고의 재능은 바로 언제나 내가 가진 것이 최고의 패라고 생가갛고, 내가 한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 그 선택이 실패로 결론이 난다면, 거기서 내가 또 뭔가를 배웠을 테니 괜찮다고 다독인다. 다름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며 스스로를 기죽이지 않는다. 나에게 최선은 지금,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에도 없다.


지금부터 이곳은 나에게 최선의 장소여야만 한다.



8. 행동엔 목적이 있어야 하며, 시간의 투입엔 합당한 결과가 뒤따라야 했다. 실력 향상이든 정신적 안정이든 근육증진이든. 끝없는 상향 곡선의 세상. 어른이 된 우리에겐 실패할 기회와 시간조차 쉽지 않다. 한 번의 실패로 영원한 나락에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세상에 떠돈다. 그러니 의도가 필요하다.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 속에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가져다 놓는 기획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처럼.



9. 길을 걷던 내 눈에 술집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Remain, C’est Loin. 뭐라고? 내일은 아직 멀다고? 내일은 멀어. 내일은 아직 멀어. 내일은 멀어.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며 살지 마. 지금 나에게 온 오늘을 살아버려. 내일을 위해 계속해서 준비하고, 내일을 위해 참아야 하는 오늘을 끝내버려. 내일을 위해 오늘 너무 많은 걸 감내할 필요는 없어. 오늘도 인생이야. 아니, 오늘이 인생이야. 머나먼 내일 대신 오늘 하루를 원하는 모양으로 살아버려. 그렇게 원하는 모양의 하루하루가 모이면? 그럼 원하는 모양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야.



10. 40년 넘게 정해진 모양대로 살았던데, 앞으로의 모양도 정해져 있다면 조금 슬플 테니까. 무정형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찬찬히 나만의 하루를 완성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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