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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Jan 05. 2024

밀린 숙제 하러 한국 가는 우리 가족

고국방문은 1% 좋고 99% 힘든 일

우리 가족은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3주간 한국을 다녀오고, 22년도 9월에 3주간 한국에 다녀왔다. 다음 한국 갈 시기는 25년도. 빠르면 올해 중으로 생각하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국인인 우리 아이들은 영어로 된 영화나 프로그램은 일체 좋아하질 않고 오로지 한국 유튜브, 한국 드라마, 한국 예능만 본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한식을 제일 좋아하는데 자꾸만 먹고 싶은 음식들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엄마 나도 탕후루 먹고 싶어.. 족발이 먹고 싶어.. 곱창도 먹고 싶어.. 한국에 교촌치킨도 먹고 싶어.. 국밥도 먹고 싶어.. 노래방도 가고 싶고, 좋아하는 연예인 콘서트도 가고 싶고, 바다낚시도 하러 가고 싶고, 인생 네 컷도 찍어 보고 싶고, 제주도도 가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어 하는 곳도 많다. 한 번도 가보지 않고,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것들도 티브이만 봤다 하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 아이들. 비록 내가 해줄 수 있는 음식은 해주지만 역시나 한국에서 파는 음식 맛은 따라가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한국 갈래, 한국 가자, 엄마 우리 다음엔 한국 언제가.. 한국한국한국..!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그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 또한 먹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한국에서 26년을 살다 왔는데 한국에 가고 싶다면 내가 너희들보다 더 그렇지 않겠니!? 

그런데 아이를 낳고, 이민을 하고 산지 11년. 이제 가는 한국은 그동안 못다 한 숙제를 하러 가는 곳이지 더 이상 그동안 못 먹고, 못 가고, 못 즐긴 것들을 하고 오는 곳이 아니게 됐다. 


매 해 3월이 되면 남편직장에서는 1년 치 휴가 계획을 미리 짜기 시작한다. 그 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의 휴가계획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1월 즈음이 되면 앞으로 1년 안에 휴가 계획을 미리미리 세워야 한다. 언제쯤 어딜 갈지 정해야 휴가를 언제 얼마큼 쓸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엔 한국을 가야 할 것 같은데, 내년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갈지 아니면 한국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위해 이번엔 좀 앞당겨서 올해 다녀올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매번 아빠의 휴가기한 때문에 3주만 다녀왔는데 이번엔 한 달 간다는 가정하에,

비행기 값이 내릴 거라 해도 우린 다섯 명이니까 7500불 잡고, 친정이나 시댁이나 머무를 곳이 마땅치 않으니 에어비앤비를 구해야 하는데 2022년에 우리가 쓴 비용보다 올랐을 테니 3000불 잡아보자. 최소한으로 잡은 비용인데 아직 시작도 안 한 한국여행에 이미 만 불 이상을 지불했다. 천만 원이 우습네..

가면 식비, 놀러 다니는 비용, 한국에서 사 올 물건들 등등을 합치면 다 합쳐서 못해도 2만 불이다. 실제로 2022년 한국방문 때 서울 근교 놀이동산에 다녀온 게 전부인데 쓴 비용이 2천만 원이 넘었다. 아마 이번에 한 달을 간다고 하면 그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다.


모든 여행이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한국을 가는 일은 다른 곳에 가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은 드는 기분이다. 그 비용을 재다보면 한국을 가고 싶은 마음을 감춰야 할 만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비용을 능가하는 행복한 여행이 될 예정이라면 얼마든지 그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즐겁게 여행을 계획할 텐데.. 남편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한국 여행은 결국 즐거움은 1%뿐이고 99%는 힘든 여행이 될 것이라는 걸, 우리가 계획한 대로 할 수 있는 일 하나도 없다는 걸 말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한국. 최소 3일은 시차적응을 해야 하고, 3일 후부터는 그동안 못 만난 가족, 친지들을 만나러 다녀야 한다. 시댁은 시댁대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시고, 친정은 친정대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신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으면서도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이미 다 계획을 하고 왔음에도 이상하게 한국만 가면 먹고 싶은걸 마음껏 먹으러 갈 여유도, 가고 싶은 곳을 우리끼리 맘 놓고 다닐 여유는 생기지 않는다. 친구들도 잠깐잠깐 만나야 하고, 필요한 것들도 사러 다녀야 하고,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공공업무도 해결하러 다녀야 한다. 그러다 보면 3주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비싼 돈을 들여 한국에 왔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 행복하지가 않다. 

이번에도 나는 이곳에 밀린 숙제를 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비싼 돈, 시간 들여 숙제하러 한국에.. 

사실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행복하지가 않다. 매일이 피곤하고, 눈치 보이고, 지치는 여행이다. 돌아가고 싶다..


한국을 간다는 건 우리 가족만의 행복한 시간을 위할 수 없는 일이다.

양가의 눈치가 보이는 일이고, 부모님들의 일정과 원하시는 바도 생각해야 하고, 그동안 못다 한 일들도 해야 한다.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혹여나 양가 어르신들이 서운해하실까 계획을 했다가 취소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가끔 바람 쐬러 근처 어디라도 다녀오겠다고 하면 한 시라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시어머니는 아이들을 놓고 가라고 하신다. 아이들도 같이 가려고 했던 일정에 아이들을 두고 가게 됨으로써 시간이 바뀌는 것뿐 아니라 좀 더 일찍 움직여서 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기고, 일이 끝나면 또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고, 데리러 갔다가 밥을 먹었는데 또 먹어야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피곤은 누적되고 내일 일정은 꼬이고..


지난번 한국 방문 때는 해산물을 너무도 좋아하는 둘째 아이가 바다에 가서 배낚시를 무척이나 하고 싶어 했다. 배낚시가 끝나면 좋아하는 해산물도 사주고 꽃게도 실컷 먹이고 오고 싶었다. 위니펙은 산도 바다도 없는 곳이기에 이번엔 꼭 데리고 가마하고 간 한국이었다. 속초를 가기로 했고 숙소도 미리미리 알아봤다. 차편도 알아보고 배편도 알아보고 날씨도 알아보고..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애들이 뭐 먹고 싶어 하냐 하시기에 별생각 없이, 둘째가 꽃게랑 조개 같은 것 먹고 싶다고 해서 언제 속초 한번 당일로라도 다녀올까 해요. 했더니 그다음 날 가족식사자리에 시어머니께서 꽃게와 조개를 잔뜩 사 오신 게 아닌가. 뭐 하러 속초까지 가서 꽃게를 먹느냐고. 마음껏 먹어라~ 하시는데..

하아.... 이게 아닌데..

바다 가는 날만 기대하고 온 아이인데.. 거기 가서 꽃게 먹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 아이인데..

우리는 그렇게 또 속초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


한국 가는데 드는 비용.

거취문제.

매일매일 우리의 일정에 대한 보고.

양가 부모님의 눈치.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의 절반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다.

이번에도 그래야겠지.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고 싶은데, 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다녀오고 싶은 곳 한국.


그 돈이면 다른 해외여행지를 가지..

그런데 그 여행이 우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일과 같다고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을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그날. 오랜 비행 끝에 돌아온 집이라 몸은 너무너무 피곤한데도 엄청난 과제를 해결하고 온 듯한 그 기분. 다시는 안 간다! 하면서도 한국 가고 싶어 노래 부르는 아이들만 보면 안 갈 수도 없는 한국. 이 어려운 일들을 언제까지 어렵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저녁, 먼저 한국 가자 이야기를 꺼낸 딸이 내가 이런저런 비용계산을 하기 시작하니 안 가도 괜찮다고 한다. 이젠 딸내미가 좀 커서 엄마가 얼마얼마 비용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정도 가늠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나 돈이 많이 드느냐고.. 그럼 한국 안 가도 괜찮다고 말한다.

"아니야.. 이건 비용의 문제가 아니야. 비용을 넘어서 반드시 언젠간 해야 하는 우리들의 숙제 같은 거야. 이왕 가는 거 우리 모두 다 즐겁게 다녀왔으면 좋겠는 게 엄마아빠의 마음인데 역시나 한국은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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