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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Sep 08. 2024

꾸준히 준비한 보람

남은 30대는 멋진 40대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

7월 마지막주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가 확실하지 않은 전화를 잘 안 받는 나는 그날 걸려온 그 전화도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다 번호가 스팸 같지 않고 너무도 말끔해서 전화를 받기로 했다.

"헬로"

"헬로. 네가 **이니?"

"응"

"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인데.." 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네가 internationally Educated Nurses(IEN) 프로그램에 등록한 걸 알고 있어. 

몇 가지 물어볼게. 

-최근에 본 영어점수 있니? [6월에 본 게 있긴 한데 커트라인을 넘진 못했어]

-NNAS 한 거 있니? [응. 올해 1월에 했어]

-NCLEX결과 있니? [응]

-마지막 일한 지는? [한국에서. 11년 전에....]

-부서는? [중환자실. 3년]

-좋아. 그럼.. 풀타임으로 1년간 정부지원으로 하는 Nurse re-entry program를 너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할래? [오...?]


학교..? 갑자기? 

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내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다시 가야겠다던가, 영어점수 통과를 위해서 영어학교를 다녀야겠다던가.. 그런 종류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매일같이 영어점수가 통과되지 못해서 속상했고 이 빌어먹을 놈의 영어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다. 캐나다에서 원하는 영어점수를 내기 전까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 주부로 살거나, 아이들이 좀 커서 여유가 있으면 집안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6개월 공부하면 일할 수 있다는 Heatlth care aid가 전부였다. 좀 더 나아가 돈이 벌고 싶은 목적이라면 영어도 못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사업뿐이었다. 커피숍이든, 음식점이든,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든...


그런데 학교라니. 영어도 안 되는 내가 캐나다 간호사가 될 수 있다고?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말하는 IEN이라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고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낸 지 올 해가 3년째 되는 해였다는 것이다. 그 존재 자체도 잊고 살았었는데.. 느닷없이 전화가 와서는 


너에게 이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1년 과정이며, 학비는 물론이고 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before, after school에 대한 비용, 교재비, 대중교통비용, 학교 주차비, 심지어 모든 서류제출 들어가는 비용까지.. 모든 건 정부지원으로 되다는 것이었다. 또한 1년 과정이 끝나면 영어점수를 따로 제출할 필요는 없으며 모든 과목이 70% 이상(B학점 이상)이면 통과가 되고 대부분 온라인 과정이며, LAB이 있을 때만 학교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병원 실습을 하게 되고 모든 과정이 끝나면 병원 취업까지 연계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정말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가 9월부터 1학년이다. 막내가 1학년이 될 때까지 그동안 10년 넘는 시간을 아이들을 내가 집에서 손수 키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만약 막내가 조금이라도 어렸더라면 나는 어쩌면 이 기회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침 막내가 벌써 이만큼 커서 1학년에 들어가는 이 시점에. 아이들을 이만큼 키워놓은 딱 이 시점에 나타난 기회라니.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개강을 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10여 년 전,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대학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어본 경험은 없었던 것 같다. 매일같이 학교를 갔고,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났고, 수업을 들었고, 실습을 했었다.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고, 특히나 코로나시기를 지나면서 요즘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모양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집에서 육아만 하고 살았던 나로서는 이 모든 시스템이 어렵고, 낯설다. 심지어는 무섭기까지 하다. 한국어 교재도 어려운데 영어로 모든 문서를 읽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한글로 책도 너무 많아 읽을 수가 없는데 지금 하는 수업은 대부분 E-book이라 힘들다. 

눈알이 빠져나온다는 게 뭔지 온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나의 20대는 대학졸업, 첫 직장, 결혼, 이민, 두 아이 출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30대는 막내아이 출산 및 끝없는 육아뿐이었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요즘 시대에 30대 중반이 넘어서도 신혼을 즐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을 해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한 건 '남이 행복한 걸 보지 말고 내 삶을 행복하게 살자'는 거였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남의 인생이 나의 인생이 될 수 없고, 내가 남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지금 내 인생이 남들 보기에 부럽지 않은 인생은 아니라고. 나의 인생도 누군가에겐 부러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인생을 '누구 보기에'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나 자신이 행복한 그런 인생을 살자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30대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집중되어 있다.

내가 영어를 한답시고 육아를 미뤄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돈을 벌고 싶다고 육아를 미뤄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엄마가 필요한 시기니 나의 30대는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살자.

하지만,

나를 버리지는 말자.

나의 인생은 30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인생을 8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육아를 하는 시기는 고작 길어야 20년. 짧게는 15년.

그럼 내가 45살이 됐을 땐, 큰아이가 20살, 둘째 18살, 막내 15살. 사실상 육아는 끝났다고 봐도 괜찮겠지.

그럼 45살부터 80살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얼 하며 내 인생을 충만하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나의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란 게 구체적으로 없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간호사 면허를 이용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캐나다에 계속 살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영어라면 이제 그만 무서워하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영어를 계속한다. 잘하든 못하든 그냥 꾸준히 한다. 꾸준히 하는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가 40살이 되기 전에 간호사로 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40살이 되기 전에 나의 멋진 40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40이네..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의 40대는 준비되고 있었고, 준비되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40대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은 늘 있었는데, 

근데 그걸 이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 내가 계획했던 40대 전 캐나다 간호사 면허 따기 준비가 어쩌면 가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 주간, 눈알이 빠지게, 어느 날은 10시간이 넘게 컴퓨터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많이 피폐해진 걸 느꼈지만 이 모든 게 그저 감사한 순간이라는 걸 안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아이들 때문에 울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내가 싫어 울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종일 집안일 하느라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도 오밤중에 단 한 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영어공부 해왔던 것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90점 이상 받아오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내가 받아내야 하는 70점은 너무도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1년 동안 밤낮으로 열심을 다한다면, 어쩌면 1년 뒤, 유창한 영어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담은 최선의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40대는 집 안에만 갇혀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밑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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